실연한 사람은 '버림받은 악기'다. 더 이상 선율을 연주하지 못한 채 구석에 처박힌 악기라니! 사랑의 황홀경과 충일감에서 내쳐질 때, 그것이 어느 한쪽의 결정일 때 실연당한 자는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매달려 "설명해줘요. 내게, 사랑이여,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그 소름 끼치는 시간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시구로 유명한 여성 작가 잉게보르크 바흐만(1926~1973)이 그랬다.
바흐만은 작가 막스 프리슈와 사랑을 하다가 헤어졌다. "사랑을 위하여/차린 식탁을 바다에 뒤엎고/잔에 남은/포도주를 바다에 버리고 빵은 물고기에게 주어야 한다./피 한 방울/뿌려서 바닷물에 섞고/나이프를 고이 물결에 띄우고/신발을 물속에 가라앉혀야 한다" 같은 시가 실연의 시름에서 빚어졌다. 빵과 포도주는 삶의 양식이자 기쁨인 것! 사랑을 잃은 자는 그것마저 버리고 돌아올 것을 기약하지 않은 채 떠난다.
바흐만은 오스트리아 남부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나 빈과 인스부르크 등의 대학에서 법학과 언어철학을 공부했다. 20대 때 방송국에서 스크립터나 편집자로 생계를 꾸리며 오직 시에 헌신하려고 메마른 날을 견뎠다. 1953년 첫 시집 '유예된 시간'을, 1956년 두 번째 시집 '큰곰자리의 부름'을 펴냈다.
서른 살 무렵 나폴리와 로마에 머물며 기념비적인 첫 소설집 '삼십세'를 써나간다. 나는 문장 전부를 외우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삼십세'라는 소설집으로 바흐만과 만났다. '말리나'와 '만하탄의 선신(善神)'을 잇달아 읽었다. 1980년대 내가 꾸리는 출판사에서 바흐만의 소설 '죽음의 방식'과 시선집 '소금과 빵'을 펴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시인 파울 첼란이 1970년 파리의 센 강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그를 사랑하던 바흐만은 큰 비통에 잠긴 채 "내 삶은 끝났다. 그가 강물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 삶이었다. 나는 그를 내 목숨보다 더 사랑했다"라고 썼다. 그 뒤 바흐만은 로마의 한 호텔방에서 약물에 취한 채 담배를 피우다가 생긴 화재로 화상을 입고, 1973년 10월 17일 병원에 실려온 지 한 달 만에 숨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