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박일환, 손지열, 안대희

차한성 전 대법관이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의 상고심 변호를 맡으면서 전직 대법관 출신들에 대한 전관예우 논란이 일었다. 대한변협은 "사법 신뢰를 훼손한다"며 그의 사임을 촉구하기도 했다. 본지가 대한변협 자료를 분석한 결과 실제 전직 대법관 출신들은 한 해 수십 건의 대법원 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대법관 출신들이 변호사 선임서에 도장 한 번 찍어주고 수천만원의 '도장값'을 받는 관행도 남아 있었다.

지난해 대한변협은 2016년 한 해 동안 판결이 선고된 대법원 사건 중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수임 내용을 전수조사했다. 당시 조사 결과를 본지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박일환(2012년 퇴임, 법무법인 바른) 전 대법관은 대법원 사건 중 가장 많은 30건을 수임했다. 2위는 손지열(2006년 퇴임, 법무법인 김앤장) 전 대법관으로 24건, 3위는 안대희(2012년 퇴임, 법무법인 평안) 전 대법관으로 23건을 수임한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 초 기준으로 변호사로 등록한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모두 38명이다. 2016년 한 해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수임해 판결이 선고된 대법원 사건은 총 263건이었는데 이 중 수임 순위 상위 10인이 수임한 건수가 184건(70%)을 차지했다. 38명 중 9명의 전직 대법관은 변호사 개업은 했지만 사건은 수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0위 안에는 퇴임 후 한때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을 하며 화제가 됐던 김능환(2012년 퇴임, 법무법인 율촌) 전 대법관도 포함됐다.

특히 상위 10위 중에는 거동이 불편해 사무실에 거의 출근도 하지 않는 전직 대법관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이른바 변호사 선임서에 이름만 올리고 3000만~5000만원의 '도장값'을 받는 변호사로 볼 수 있다"고 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 수임 내용을 같은 방식으로 분석한 결과도 비슷했다. 손지열 전 대법관이 384건으로 가장 많은 사건을 수임했고, 2위는 164건을 수임한 박일환 전 대법관이었다. 3위는 윤재식(2005년 퇴임, 법무법인 민주) 전 대법관으로 151건이었다. 마찬가지로 6년간 상위 10인의 수임 사건 수는 1316건이었는데, 이는 같은 기간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수임해 판결이 선고된 대법원 전체 사건(1875건)의 70%를 차지했다.

특히 손지열 전 대법관은 2011~2015년까지 5년 연속 대법관 출신 변호사 중 수임 건수 1위를 기록하다가 2016년에만 2위를 차지했다. 2013년부터 변호사로 일한 박일환 전 대법관은 2013~2015년까지 3년 연속 수임 건수 2위를 기록하다가 2016년에 1위에 올랐다. 전직 대법관 출신 변호사 중 두 사람이 사실상 '톱2'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사건 수임은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전직 대법관의 사건 수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전직 대법관이라면 자신의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생각해 사건을 가려서 맡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법부를 상징하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국민이 사법부를 보는 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고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