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는 1일(현지 시각) “어떤 방어망도 뚫는 핵 추진 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주장에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는 미국을 보호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다만 미국의 MD는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데이나 화이트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미국의 MD는 방어가 아닌 억제를 위한 것”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화이트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의 주장에 놀라지 않았다”며 “미국의 MD는 러시아의 핵무기를 겨냥하고 제작된 것이 아니다. 러시아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믿을만한 핵 억제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미국을 지킬 준비가 돼있다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이날 두마(하원)에서 가진 국정연설에서 “어떤 MD도 무력화할 수 있는 핵 추진 크루즈 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미사일은 기존 탄도미사일의 발사 방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MD가 쓸모없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핵 추진 엔진을 장착한 무인 수중 드론과 극초음속 미사일체계도 개발했다고 밝혔다. 그가 연설하는 동안 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러시아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 본토를 향하는 그래픽 영상이 나왔다.
이와 관련,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미국에 핵공격을 하는 내용의 영상을 보게 돼 유감”이라며 “미국은 이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감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백악관은 러시아가 1987년 미국과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그동안 알고 있었지만 러시아가 부인해 왔던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며 “러시아는 지난 10여년간 INF를 위반하며 무기체계를 개발해 왔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이달 초 러시아의 무인 수중 드론과 극초음속 미사일 시스템 등 푸틴 대통령이 이날 발표한 2가지 무기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핵무기 개발 발표와 함께 “러시아는 어느 누구도 위협하고 있지 않다”며 “누군가를 공격할 생각도, 무엇을 뺏을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설의 상당 부분을 서방 국가들에 대한 압박에 할애했다. 푸틴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과 서방국가를 겨냥, “러시아의 국방력 강화를 견제하기 위해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히 불법인 각종 제재를 가하면서 자신들의 군비를 늘리는 데 앞장섰지만, 그들의 시도는 실패했다”며 “아무도 우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의 말을 들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 대통령의 ‘핵무기 자랑’이 힘의 균형을 깰 것 같지는 않다”고 전했다. WP는 “러시아의 핵미사일은 이미 미국을 격파시킬 수 있는 수준”이라며 “미국의 방어전술은 핵보복에 따른 억제용이지 러시아의 미사일을 막기 위함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닉 로버트슨 CNN 국제전문기자는 이날 CNN 기고문에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극단적으로 과장된 허풍”이지만 “그의 메시지는 서방국가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섬뜩하게 다가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를 비롯해 미국, 중국 등 각국에서 군비경쟁의 전초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몇달간 국방 예산에 750억달러를 추가로 책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최근 남중국해 인공섬에 군사시설을 설치하면서 서방국가들과의 크고 작은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세계에서 국방비를 3번째로 많이 쓰는 국가로 자리잡았다.
로버트슨 기자는 이를 두고 “한 국가가 군대를 키우면 적국들이 똑같이 대응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군비 지출이 늘면 힘의 균형은 점차 약해질 수밖에 없다. 더 많은 국가가 군비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이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