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권이 사회문제로 급부상할 때 항상 '이것'이 있었다. 바로 파워 슈트(power suit)다. 성범죄·성폭력 공개 운동인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힘을 얻고 있는 요즘 파워 슈트가 다시 떠오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최근 각종 시상식에도, 유명 패션쇼 무대에도 바지 정장의 향연은 넘쳐나고 있다. 이방카 트럼프 역시 백악관 입성 이후 팬츠 슈트를 주로 선택했다. 하지만 바지를 찾는 목소리가 높아진다는 건 그만큼 여성의 인권이 여전히 핍박받고 있고, 여전히 약자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해외 유명 패션쇼에서 최근 연달아 팬츠 슈트를 선보였다. ①조르지오 아르마니 2018 가을·겨울쇼. ②크리스찬 디올 2018 봄·여름 오트쿠튀르쇼. ③살바토레 페라가모 2018 가을·겨울쇼. ④지난해 월드뱅크와 IMF 주관으로 여성 사업가 연설에 나선 이방카 트럼프.
⑤토즈 2018 가을·겨울쇼. ⑥배즐리 미슈카 2018 가을·겨울쇼. ⑦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리베 2018 봄·여름쇼.

1980년대로 돌아가 보자. '파워 슈트'라는 말이 패션계를 넘어 권익 신장과 동의어로 사용되기 시작할 무렵 말이다. 제인 폰다 주연 영화 '나인 투 파이브'(1980), 멜라니 그리피스의 영화 '워킹 걸'(1988) 등 영화 속에 등장한 파워 슈트는 성공한 여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조금 카메라를 확장해 보면 이미 지위를 점유한 남성과 달리 여성들은 말단직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고군분투해야 한다. 여성의 야심은 악녀로 표현되곤 했다. '워킹 걸(working girl)'이란 단어 뜻만 보더라도 '일하는 여성'과 '몸 파는 여성'의 이중성을 갖고 있지 않은가. 여성이 바지를 입게 된 배경에는 20세기 초 미국과 영국 등에서 확산된 서프러제트(suffragette·여성 참정권 운동)가 있다. 올해는 영국이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국민투표법을 통과시킨 지 100주년이다. 여성운동가인 아멜리아 블루머(1818~1894)가 잡지 '릴리'에 고무줄이 들어간 풍성한 바지를 대대적으로 소개했지만 오히려 역풍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패션사(史)에 '블루머 의상'이라는 이름을 남겼지만 그 옷을 입는 건 조롱의 대상이자 사회적 매장을 뜻했다. 세계 대전을 겪으며 여성이 대거 사회에 나가면서 그제야 바지도 그 힘을 얻게 됐다.

여성들이 바지를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 고작 반세기일 뿐이라는 데 너무 놀라지 말 것. 패션의 도시 파리에서 바지를 입고 활보했던 경험이 있다면 얼마 전까지 당신은 암묵적 '체포 대상자'였다. 파리에서 남성들의 복장을 여성이 입지 못하게 한 법이 공식적으로 폐지된 게 겨우 지난 2013년이다. 프랑스 혁명 뒤 민중을 뜻하는 '상퀼로트(sans-culottes·귀족들이 입던 주름 있는 반바지의 'culottes'와 없다는 뜻의 'sans'이 붙은 것)' 운동이 확산되고 여성들도 긴 바지를 입자 1799년 정부가 제동을 건 것이다.

올 시즌 파워 슈트는 여성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성 역할의 구분을 없애는 젠더리스 스타일의 유행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상 표현으로 팬츠는 널리 퍼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보고되는 성희롱과 성폭력 사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한다. 미국 시사주간지 디 애틀랜틱은 "파워 슈트를 입는다는 것이 직장 내에서 실제적인 파워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주류 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추진체로 지속적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