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세포의 ‘자가포식(오토파지, Autophagy)’ 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일본 과학자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에게 돌아갔다. 인체 내 세포는 영양분이 결핍되거나 생존에 불리한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되면 세포 내 불필요한 단백질이나 구성요소 및 소기관을 분해해 새로운 에너지원을 재생산한다는 게 자가포식 현상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 연구진은 이러한 세포 자가포식에 관여하는 세포 내 소기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연구를 신경세포에 적용할 경우 알츠하이머 치매나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질환 치료 연구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세포 자가포식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세포는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없어 죽는다. 기존 연구에서는 자가포식에 관여하는 두 세포 소기관을 관찰하기 위해 형광 단백질을 주로 이용했다. 그러나 자가포식 과정 중 분해 효소로 인해 형광 단백질이 함께 분해돼 자가포식 현상을 안정적으로 관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연구진은 강력한 형광 분자 결합쌍인 ‘쿠커비투릴’ 분자와 ‘아다만탄아민’ 분자의 특이적 결합 원리를 이용해 자가포식이 일어나는 세포 소기관의 움직임을 안정적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쿠커비투릴-아다만탄아민 분자는 이른바 ‘주인-손님’ 상호작용으로 불리는 강력한 결합을 한다.
연구진은 세포 내에서 분해 효소를 지닌 소기관인 ‘리소좀’과 분해대상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 주목했다. 미토콘드리아는 퇴행성 뇌질환과 관련이 깊다.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뇌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가 고장난 채 적절하게 분해되지 않으면 세포가 죽어 퇴행성 뇌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세포 내에서 리소좀과 미토콘드리아의 자가포식 과정을 관찰하기 위해 쿠커비투릴과 아다만탄아민 분자의 강력한 결합을 이용했다. 우선 쿠커비투릴과 아다만탄아민 분자를 관찰할 수 있도록 각각 형광 분자를 붙인 뒤 쿠커비투릴은 세포 내 리소좀을, 아다만탄아민은 미토콘드리아를 인지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자가포식 과정을 관찰하기 위해 리소좀과 미토콘드리아가 융합될 때도 형광이 나타나도록 실험을 고안했다. 두 소기관이 융합할 때 쿠커비투릴과 아다만탄아민 분자가 결합하는데, 이들에 붙은 두 형광 분자가 가까워지면서 일어나는 에너지 전이로 형광이 나타나는 원리다.
실험 결과 쿠커비투릴-아다만탄아민 형광 분자 수용액을 세포에 처리하면 쿠커비투릴은 리소좀을, 아다만탄아민을 미토콘드리아를 인지해 서로 다른 색의 형광이 나타났다. 자가포식을 위해 융합하면 에너지 전이로 인한 형광으로 융합과정도 관찰할 수 있었다. 두 세포 소기관의 각각 움직임과 자가포식 과정에서의 융합 움직임 등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김기문 IBS 복잡계자기조립연구단장은 “이번 연구에서 개발한 이미징 기술을 신경세포에 적용한다면 퇴행성 신경질환의 세포 자가포식 현상을 보다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며 “향후 암, 감염병 치료와 신약 개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독일 응용화학회지 온라인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