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게 고향의 맛이라니까요."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한 레스토랑. 국내에선 드물게 카메룬 전통 음식을 내오는 곳이다. 가나에서 온 산드라(여·30)씨는 주방장이 한 상 가득 내온 음식들을 보고 뿌듯한 듯 소리를 질렀다. 엔돌레(Ndole·잎사귀와 견과류·소고기 등을 볶아 만든 서아프리카 요리), 푸푸(Fufu·쌀을 갈아 만든 아프리카 사람들의 주식) 등 이국적인 음식들이 식탁에 가득 찼다. 가게 안에선 아프리카 전통 음악이 나오고 TV 화면엔 형형색색의 의상이 돋보이는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있었다. 흥에 겨운 산드라와 다섯 친구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5년 전 서울에 정착하고서 한 달에 4~5번은 이태원을 찾는다는 그녀는 "향수병과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서울 유일의 안식처"라고 했다.

#2. 같은 시각 서울 보광동 한 건물 지하에 있는 교회. 오전 이른 시간임에도 50여명이 50평(165.5㎡) 남짓한 공간을 가득 메웠다. 예배하고 노래 부르고, 담소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은 나이지리아와 가나 등 아프리카 국적을 가지고 있다. 주임 목사에 따르면 적을 땐 50명, 많을 땐 100명까지 모인다고 한다. 서울 한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가나 출신의 말레(30)씨도 매주 이곳을 찾는다. 말레씨는 "외로운 타지 생활 와중에 동향(同鄕)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허심탄회한 얘기를 하며 매번 마음의 위안을 얻고 간다"고 했다. 근처에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이런 종교 시설이 5곳 더 있다.

정보와 사람이 모이는 '리틀 아프리카'

여기가 서울 속 '리틀 아프리카'다.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 우사단로. 냉동 틸라피아(아프리카 동남부 원산의 민물고기)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수입 식료품점, 할랄(Halal·이슬람 율법에 의해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도록 허용된 제품) 인증을 받은 정육점, 가발 등 두발 제품을 판매하는 뷰티숍 등 외인(外人)이 운영하는 가게 100여곳이 성업 중이다. 바버숍(남성 전용 이발소)에선 아프리카에서 온 외국인 손님들을 상대로 레게 머리 등을 특화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플랜테인(바나나 비슷한 열매로 채소처럼 요리해 먹는 아프리카인들의 주식)과 칙피(병아리콩), 옥수수를 이용한 요리 등 아프리카 음식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도 여럿 있다.

이태원역이 있는 이태원로를 기준으로 북쪽인 이태원2동엔 주요 대사관과 공관들이 밀집해 있다. 고급 빌라와 단독주택이 즐비하다. 북미나 유럽에서 온 외교관이나 관료, 외국계 회사의 고위 임원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다. '아랫동네'라 불리는 남쪽 이태원1동과 보광동·한남동(일부)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교회와 음식점, 식료품점 등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커뮤니티(공동체)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리틀 아프리카'로 거듭나게 된 이유다.

2017년 9월 기준 용산구에 거주 중인 아프리카 출신 외국인은 1500명 정도. 용산구청 관계자는 "정식 체류 비자를 받지 못하고 들어와 있는 이들까지 고려하면 그 숫자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나이지리아인 654명 중 557명(85%), 이집트인 607명 중 333명(55%)이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리틀 아프리카'는 주말이면 거리에 아프리카 사람들 특유의 흥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인천과 파주·안양 등 서울 밖에서도 찾는 이들이 있다. 인천에서 중고차 관련 무역업에 종사하는 음모와(40)씨는 "예배 후엔 지인들과 이태원 구경을 가거나 보광동 일대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한다"고 했다.

'리틀 아프리카'에 이들이 모이는 건 물가가 저렴하고, 각종 정보가 흘러넘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 원룸 월세는 평균 25만원 정도. 교회와 가게, 음식점 등 아프리카인 커뮤니티에선 구인·구직 정보가 오고 간다. 4년 전 혈혈단신으로 한국을 찾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제임스(32)씨는 보광동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알게 된 지인의 소개를 받아 첫 직장을 구했고, 지금은 서울의 한 어학원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가르친다. 제임스씨는 "보광동은 실생활 정보를 얻기 쉽다. (많은 아프리카인이) 그래서 첫 한국 생활을 여기서 시작한다"고 했다.

외인 대 원주민 갈등도

'리틀 아프리카'에서는 아프리카인들과 기존 토박이 주민들이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 지역에 정착한 아프리카인들은 상당수가 건설 현장의 노동자나 영세 노점의 상인들. "동네가 슬럼화돼 집값이 떨어지고 생활환경이 안 좋아진다"는 게 원주민들의 불만이다.

지난 23일 보광동에 있는 한 수퍼마켓 앞. 나이지리아 국적의 남성 3명이 가게 앞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좁은 길목에 들어선 승용차가 진출이 더디자 경적을 울렸다. 이에 흥분한 이들은 고성을 지르고 차 문을 두드렸다. 이 광경을 지켜본 김모(68)씨는 "매일 거구의 외국인들이 끼리끼리 모여 무얼 하는지를 모르겠다. 밤에는 무서워서 큰길로도 잘 안 다닌다"고 했다.

이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월세를 아끼려고 단칸방에 3~4명씩 몰려 사는 경우가 있다. 새벽에도 고성방가로 골목을 누비는 등 우리와 생활하는 방식이 달라 불편을 겪는다"고 했다. "밀린 월세를 안 내고 야반도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용산경찰서 이태원지구대엔 관련 민원이 종종 접수된다. 경찰 관계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주말엔 취객들 사이에 집단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제지하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고 했다.

한국 생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생기는 문제도 있다. 23일 찾은 이 지역 다가구주택 앞 곳곳엔 분리수거 되지 않은 쓰레기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쓰레기를 수거하던 한 환경미화원은 "분리수거와 종량제 봉투 사용 등에 대한 개념이 애초에 없다. 쓰레기를 마구 투척해 평소 2~3배의 작업량이 필요하다"고 혀를 찼다.

늘어나는 외인, 묘수가 필요해

'리틀 아프리카'는 2000년대 들어 주한 미군이 떠나간 자리를 아프리카에서 온 상인들이 메우면서 생겨났다. 이국적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고 소문이 나 주말이면 내국인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 아프리카 음식점을 찾는 단골 중엔 한국인들도 제법 있다. 하지만 이 지역 토박이 주민들은 아프리카인 커뮤니티가 형성된 데 대한 반감이 높다. 보광동에 30년 넘게 살고 있는 전숙자(68)씨는 "관광객과 외국인만 중요하고 정작 살고 있는 사람들은 뒷전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구청은 이런 와중에도 근방에 새로운 외국인 커뮤니티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재작년 "유커(중국인 관광객) 대신 베트남·무슬림 관광객을 유치해 사드 보복을 극복하겠다"며 보광로 59길을 '베트남 퀴논길'로 명명했다. 지역 경기를 살리려는 지자체와 토박이 주민 간에 협의와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2012년 144만명에서 2016년 205만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84%에서 3.96%로 상승했다. "인구학적으로 한국 사회가 빠른 속도로 다인종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정책적인 보완과 함께 외국인 이주민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외국인 출신 국가별 이민에 대한 인식' 연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미국 사람에 대해선 65.9%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나이지리아 사람에 대해선 54.3%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이중 잣대가 두드러졌다. 향후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주민에 대한 의료 보장 체계 개선과 이주민 자녀의 교육권 보장 등 한국인과 다양한 소수 문화가 공존하면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일방적인 동화(同化) 정책에서 벗어나 내국인과 이주민의 '사회 통합'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콩고민주공화국 왕자 출신으로 2002년 한국에 망명해 최근 교수 자리까지 오른 욤비 토나(52) 광주대 교수는 "이방인들을 한국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한 요소로 여기고 적극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