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살던 50대 김모씨는 1987년 남편 허모씨와 탈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김씨는 중국에서 납치돼 인신매매를 당했고 남편과도 헤어졌다. 그 생활을 견디기 어려웠던 그는 차라리 북한에 가겠다는 생각으로 중국 공안에 탈북 사실을 자수했다. 북으로 압송돼 2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김씨는 이후 수차례 탈북을 시도한 끝에 2010년 한국에 왔다. 하나원(북한 이탈 주민들의 사회 정착 지원 기관)에 있을 때 북에서 알고 지내던 탈북자로부터 자신의 남편이 중국에서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씨는 남편 사망신고를 했고, 지난 2월엔 새로 만난 남자와 혼인신고를 했다.
그런데 지난 9월 하나원으로부터 "남편이 둘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망한 줄 알았던 허씨가 중국에서 올해 초 입국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허씨의 사망신고가 취소됐고 둘의 혼인 관계도 되살아난 것이다. 김씨는 졸지에 우리 법이 허용하지 않는 중혼(重婚) 상태가 됐다. 원칙대로라면 나중의 혼인이 취소돼야 한다. 그렇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20년의 세월이 있었다. 한국에서 만난 둘은 남이나 다름없었다. 허씨도 아내에 대한 애정이 식어 있었다.
배우자를 북에 두고 온 탈북민들은 대개 북한이탈주민보호법 특례 규정에 따른 이혼 절차를 밟는다. 북의 배우자도 법률상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 혼인 관계를 정리하지 않으면 남한에서 다른 사람과 새 출발 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이 법은 배우자가 함께 탈북한 상황이 아닐 경우 '부정행위' 같은 이혼 사유가 입증되지 않아도 이혼 판결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김씨 경우는 그런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남편이 중혼 취소 소송을 내면 김씨의 나중 혼인이 취소될 수도 있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두 사람에게 협의 이혼을 제안했다. 다행히 둘 다 동의해 이달 초 협의 이혼이 이뤄졌고 나중 결혼만 남게 됐다고 한다. 탈북민이 3만명을 넘어섰다. 복잡한 혼인 관계로 얽힌 어떤 송사가 생길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