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강동철 특파원

지난 22일(현지 시각)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성명을 통해 "다음 달 망 중립성(net neutrality)을 폐지하는 내용의 안건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망 중립성이란 인터넷망을 공공재로 간주해 구글·페이스북·트위터 등 인터넷 기업들이 데이터양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그런 원칙을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망 중립성 원칙이 폐기될 경우, 인터넷망을 운영하는 통신업체들은 실리콘밸리 IT(정보기술) 기업들에 데이터 사용량과 속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비용을 징수할 수 있다. IT 기업 입장에서는 그동안 없었던 비용이 대폭 증가할 우려가 생긴 것이다.

IT 업계에서는 이번 미국 정부의 조치는 )실리콘밸리를 견제하기 위한 신호탄이라고 해석한다. 유럽·한국 등에 이어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조차 그동안의 공생(共生) 관계를 깨고 정부가 실리콘밸리에 전방위적인 견제와 규제를 들이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방위적 압박받는 실리콘밸리 기업

미국 내에서 실리콘밸리에 대한 견제의 움직임은 최근 들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열린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청문회가 대표적이다. 청문회에 출석한 구글·페이스북·트위터의 법무 담당자들은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상에서 이뤄진 러시아 정부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페이스북·트위터 등에 따르면, 미국 대선 기간에 약 1억2600만명의 페이스북 사용자가 러시아에 의해 배포된 콘텐츠를 봤고, 트위터상에서도 러시아가 운영하는 2752개의 계정과 3만6000여개의 봇(자동 프로그램)이 수백만 개의 트윗(단문 메시지)을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의회에서는 이에 대해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이 해외 정부의 자국 정치 개입을 수수방관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알 프랑켄 상원의원(민주당)은 "러시아가 페이스북에 집행한 정치 광고는 루블화로 결제됐음에도, 이를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게다가 미 의회는 최근 구글·페이스북·트위터 등의 주력 사업 모델인 광고 사업에 대한 규제도 만들고 있다. 구글·페이스북 등에 게재된 정치 광고에 대해 노출 기간, 타깃은 물론이고 광고비를 누가 결제했는지까지 공개하게 하는 '어니스트 애드 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안이 시행될 경우에는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광고 사업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신상 정보가 낱낱이 공개되는 상황에서 광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인터넷상에 올라온 콘텐츠에 대해 인터넷 기업에 법적 책임을 묻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 6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구글이 검색 시장의 독점적인 지위를 남용해 자사의 온라인 쇼핑 서비스에 혜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24억2000만 유로라는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 이와 별개로 광고와 스마트폰 운영체제에 대한 반독점 혐의 조사도 진행 중이다. 이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는 구글의 인공지능 자회사인 딥마인드가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고 밝혔고, 독일 정부는 가짜 뉴스 유통을 방치하는 SNS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법안도 통과시키는 등 다각도의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여론도 등 돌리기 시작… 시련 맞는 실리콘밸리

게다가 일반 여론까지 실리콘밸리에 등을 돌리고 있다. 최근 영국의 가디언은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일한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그동안 혁신을 통해 세상을 바꿔왔다는 호평을 들었지만, 그 이면에는 극심한 성차별과 성희롱과 경쟁만 강조하는 사내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올해 초 우버의 전 CEO 트래비스 칼라닉의 성추문 사태가 대표적이다. 또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이윤만 추구하는 탐욕적인 모습만 남았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실리콘밸리에서는 "너무 안일하게 대처해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리콘밸리 대기업들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재임했던 8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오바마 정부는 망 중립성 원칙 수립 등을 통해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고, 구글·페이스북 등은 막대한 정치자금을 후원했다. 실제로 구글만 하더라도 작년 로비 자금으로만 1543만달러나 썼다. 하지만 로비 자금이 대부분 민주당에만 쏠리다 보니 오히려 역풍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알파벳(구글의 모회사)의 이사회 의장인 에릭 슈미트는 지난 대선 당시 개인적으로 힐러리 클린턴을 도왔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며 "이 같은 행동이 그동안 워싱턴D.C.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구글을 심판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