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이 전국을 흔들었다. 1년 전 근처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을 경험했음에도 포항 지진에는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했다. 지진은 현재 기술로는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태풍은 바닷물과 대기 상태를 감시하고 있다가 변화가 생기면 바로 알 수 있지만, 지진은 수십㎞ 지하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센서를 지하에 두고 실시간 감시하지 않는 한 예측할 수 없다.
수퍼컴퓨터들이 난공불락의 지진 예측에 도전하고 있다. 과거 지진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퍼컴퓨터로 계산해 지진이 어떻게 시작해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 컴퓨터에서 모의로 구현하는 시뮬레이션 연구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오광진 수퍼컴퓨팅서비스센터장은 "각국의 지진 시뮬레이션 연구는 수퍼컴퓨터와 같이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수퍼컴, 아파트 단지별 지진 피해 분석
지난 17일 미국 콜로라도주(州) 덴버의 콜로라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수퍼컴퓨팅 콘퍼런스 2017'에서 중국 칭화대 연구진이 지진 시뮬레이션 연구로 대회 최고상인 '고든벨상'을 받았다. 칭화대 연구진은 1976년 발생한 탕산(唐山) 대지진을 세계 최고 수퍼컴퓨터인 '선웨이 타이후라이트'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의 우시 국가수퍼컴퓨팅센터에 있는 선웨이 타이후라이트는 1초당 최대 93페타플롭스(1페타플롭스는 1초당 1000조번 연산 처리), 즉 9경(京)3000조(兆)번 계산이 가능하다.
연구진은 320㎞×312㎞ 면적의 지각 움직임을 지하 40㎞까지 분석했다. 특히 지금까지 지진 시뮬레이션이 분석하지 못하던 18헤르츠(Hz) 이상의 고주파 진동까지 계산해냈다. 연구진은 "이번 시뮬레이션에서 선웨이는 평균적으로 1초당 18.9페타플롭스(1경8900조번)의 계산을 수행했다"며 "현재 지진을 시뮬레이션하는 수퍼컴퓨터 중에는 가장 빠르게 계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분석 대상 지역을 25m 단위로 쪼개고 지진의 규모와 움직임을 분석하고, 피해는 어떻게 될지 4초마다 시뮬레이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아파트 단지마다 각각 지진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피해를 입힐지 따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지진 위험 지역에서 건축 표준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미국은 전 세계 253건 지진 3D로 분석
수퍼컴퓨터의 전통 강자인 미국도 이번 콘퍼런스에 지진 시뮬레이션 기술을 선보였다.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는 콜로라도 컨벤션센터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전시관에서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지진 253건의 움직임을 3D(입체) 영상으로 보여줬다. 이 연구소에는 미국에서 성능이 가장 뛰어난 수퍼컴퓨터인 '타이탄'이 있다.
오크리지 연구소는 세계 각지에서 일어났던 지진 1000여 건의 진앙과 규모 등을 분석해서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었다. 이를 다시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지진 253건에 적용해 해당 지진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줬다.
연구소 관계자는 "지진은 발생한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서는 엄청나게 진폭이 좁은 진동으로 움직이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진폭이 커진다"며 "이를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는 지진 발생 지역을 중심으로 고(高)해상도로 시뮬레이션해야 한다"고 말했다.
TV의 화소(畵素) 수가 늘어날수록 TV 화질이 선명해지듯, 지진 분석에서도 각 지역을 아주 세밀하게 쪼개야 정확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수백 페타바이트(PB·1PB는 104만8576기가바이트)에서 엑사바이트(EB·1EB는 1024페타바이트) 이상의 데이터를 한꺼번에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수퍼컴퓨터가 필수다.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와 미국의 수퍼컴퓨터 연구 단체인 CASC(Coalition for Academic Scientific Computation)도 나란히 수퍼컴퓨터를 이용한 지진 시뮬레이션 모델을 선보였다. 일본의 도호쿠대 연구진은 지진과 함께 발생하는 지진해일의 규모와 방향, 속도 등을 시뮬레이션하는 수퍼컴퓨터 기술을 선보였다.
◇시추 정보 결합하면 예측력 높아질 듯
수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지진 예측으로까지 발전하려면 더 많은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땅을 뚫어 지층이 절단돼 있는 단층(斷層)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한 정보들이다. 극히 드물지만 시추로 지진 예측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이윤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미국은 2001년 12월 산안드레아스 단층대를 시추해 2003년 2월의 지진을 예측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며 "일본도 2003년부터 지하 7㎞까지 시추하면서 지진을 예측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퍼컴퓨터는 시추를 통한 예측 성공 사례로 시뮬레이션의 정확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말하자면 통계학적 방법과 시추 결과를 결합하는 것이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지진이 발생할 만한 단층과 그곳에 에너지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알아도 발생 시점이나 규모는 예측이 어렵다"며 "지금까지 발생한 지진 정보를 토대로 만든 시뮬레이션은 문제가 된 단층이 지금 에너지를 분출할지, 아니면 좀 더 에너지를 축적할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