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클리셰(진부함)를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어차피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란 아주 드무니까요. 중요한 건 익숙한 대상을 어떻게 재해석하느냐죠."
23일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만난 그래픽 디자이너 마티아스 아우구스티니악(Augustyniak·50)이 전시장에 걸린 작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우구스티니악은 프랑스 디자인 듀오 'M/M Paris(파리)' 멤버 중 하나로 이곳에서 24일 개막하는 한국 첫 단독 전시에 맞춰 방한했다. 전시 제목 'M/M 사랑/사랑'은 'M'의 프랑스어 발음이 사랑을 뜻하는 단어(Aime)와 비슷하다는 데 착안해 정했다.
아우구스티니악이 말한 작품은 한국 전시를 앞두고 태극기를 재해석해 만든 것이다. 그는 "국기(國旗)도 대표적인 클리셰"라며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대상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M/M'과 '사랑/사랑'으로 태극기의 괘(卦)를 표현하고 태극 부분에는 해와 물을 형상화했다.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숲과 물이 많은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태극기를 닮았지만 디테일이 다른 이 작품이 M/M의 세계로 한국 관객들을 이끄는 초대장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인들은 이걸 보면서 더 큰 질문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가령 '통일 한국의 국기는 어떤 모양일까'처럼요."
M/M은 아우구스티니악과 미카엘 암잘렉(Amzalag)이 1992년 파리에서 결성했다. 가수 마돈나, 카니예 웨스트, 패션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 질 샌더 등과 협업했고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과 파리 퐁피두센터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2013년에는 아이슬란드 가수 비요크(Bjork)의 앨범 '바이오필리아'의 패키지를 디자인해 그래미어워드에서 '베스트 레코딩 패키지' 부문을 수상했다. 아우구스티니악은 "비요크는 수상을 못 했는데 우리만 상을 받아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세상은 때론 불공평할 때도 있다"며 웃었다.
이번 전시는 두 개의 층을 각각 다르게 구성했다. 위층에는 M/M의 대표작들이 전시된다. 남녀 모델의 흑백 사진으로 형상화한 알파벳 시리즈, 강렬한 원색을 사용한 아트 포스터 시리즈 등이다. 형태와 색채가 변화무쌍하지만 아우구스티니악은 "두 디자이너의 개성을 모두 녹이면서 어느 한쪽이 두드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일관된 원칙"이라며 "각자의 개성이 여러 작품에서 변주곡처럼 표현된다"고 했다.
위층은 "음악에 비유하면 서곡, 음식으로 비유하면 애피타이저"다. '본론'에 해당하는 아래층은 상상 속 정원처럼 꾸몄다. 미로처럼 구성한 공간을 산책하며 관객들이 곳곳에서 작품들과 마주치도록 했다. "미술관 하면 새하얗고 평면적인 공간만을 상상하지요.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관객들이 실재하는 공간을 몸으로 느끼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이곳에 녹여 놓은 우리의 생각을 관객들이 느끼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 3월 18일까지.(02) 2014-7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