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넵병’, ‘일하기싫어증’ 등의 신조어가 현대인의 기분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등 정신질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넵병은 직장에서 상사나 클라이언트에게 대답을 ‘넵’으로 하게 되는 증상을 말한다. ‘네’는 너무 딱딱하고 ‘넹’은 장난스러워 보이니 ‘넵’이라고 써서 보다 유하고 신속 정확한 느낌을 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짧은 대답 한마디에도 남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요즘 현대인의 고충이 담겨있다.
일하기싫어증은 ‘일하기가 싫어서 말을 잃은 상태’를 일컫는 말로, 일하기 싫다와 입으로 소리를 내지 못하는 병적 증상인 ‘실어증’의 합성어다.
23일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원-과장-부장이 걸리기 쉬운 정신질환을 분류해 소개했다. 사원급은 번아웃증후군, 과장급은 범불안장애, 부장급은 우울증을 앓기 쉽다고 병원 측은 설명했다. 넵병, 일하기싫어증 등은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으로 인해 무기력해지거나 우울해지는 병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윤현철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컴퓨터와 휴대폰, 온라인 메신저 등으로 업무를 지시받고 보고하면서 ‘24시 항시대기’ 모드의 직장인이 돼버렸고, 이런 환경 변화는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늘 긴장하고 불안해해야 하는 현대인을 만들어냈다”며 “높은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압박감, 감정의 불안정함에서 오는 육체적, 정신적 질환들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사회 초년생이 겪기 쉬운 정신질환으로 꼽힌 ‘번아웃증후군’은 불 태워 없어진다라는 뜻의 ‘소진(燒盡)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면서 무기력해지는 증상으로, ‘일하기싫어증’도 이에 해당한다.
번아웃증후군은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느낌이 든다 ▲쉽게 짜증나고 노여움이 솟는다 ▲만성적인 감기, 요통, 두통과 같은 증상에 시달린다 ▲감정의 소진이 심해 우울하다는 감정을 느낀다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아진 것 같고 예전과 달리 열정이 사라졌다 ▲잠을 자도 피로가 누적되는 것 같고 이전에 비해 더 빨리 더 쉽게 지치는 것 같다 ▲속이 텅 빈 것 같고 일과 자기 자신,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등의 증상을 느낀다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번아웃증후군은 여유를 갖고 편안한 대화, 운동, 여가활동 등을 통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이 증상 극복에 도움된다. 증상 수준이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이거나 장기간 지속될 경우 전문가를 찾아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뚜렷한 원인을 모른 채 지나친 긴장감을 계속해서 느끼는 ‘범불안장애’는 불안장애 유형 중 하나로 일정한 수준의 불안한 감정을 계속해서 느끼게 되는 증상을 말한다. 범불안장애는 윗사람과 아랫사람 모두를 챙겨야 하고 혹시나 생길지도 모를 문제에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하는 중간관리자들이 많이 겪게 된다. 과도하게 걱정이 많아지거나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몸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하고, 이 영향으로 신체 대사가 불균형해지고 복부비만, 고지혈증, 심혈관계 질환으로 이어진다. 지속적인 불안감 탓에 폭식을 하거나 술, 약물 등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범불안장애는 ▲안절부절,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쉽게 피곤해진다 ▲집중하기 어렵다 ▲쉽게 화가 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근육이나 전신이 경직된다 ▲수면장애가 있다 등 6가지 증상 중 3가지 이상을 6개월 이상 겪게 될 때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안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 커피나 음료, 약물 등에 의존하기 보다는 복식호흡과 같은 긴장이완 훈련을 통해 마음을 진정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뢰할 만한 전문가의 상담을 받거나 증상이 심할 때는 약물 처방을 통해 치료를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40대 이상의 부장급은 우울증이 걸리기 쉽다. 우울증은 중년 이후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가정과 회사에서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 중년들의 과도한 부담감과 책임감, 사회와 가정의 소통 단절 등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면서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남성은 40대 이후부터 남성호르몬이 떨어지면서 세로토닌 분비도 감소해 우울증이 쉽게 유발된다. 또 전통적인 고정관념으로 인해 남성들이 슬픔이나 상처 등을 감추려하다 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는 분석했다. 실제 여성보다 남성 우울증 환자의 자살률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받는 우울증 환자 수는 오히려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적다.
우울증의 주요 증상은 의욕 저하와 우울감, 인지 장애, 정신 장애, 신체적 장애 등 다양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온다. 우울증은 우울감과는 다르다. 우울감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지만 우울증은 의지만으로는 없앨 수 없는 ‘질병’이다.
윤현철 교수는 “누구나 우울감을 경험하지만 우울증은 사회생활과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고 보통 2주 이상 지속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며 “치료를 통해 힘든 기간과 강도를 줄여 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므로 증상이 심하거나 지속되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한다”고 조언했다.
우울증은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진단받으며, 면담 치료, 인지 치료, 집단 치료, 약물 치료 등을 실시한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뇌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다. 증상이 심각하더라도 2~3개월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호전된다. 우울증 문제는 주변 사람들의 인식도 중요하다. 의지 탓이라며 환자를 몰아붙이면서 윽박지르거나 단순히 힘내라고 격려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허심탄회한 대화나 서로를 이해하고자하는 마음으로 도와줘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