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노사가 지난해 5월 도입한 성과연봉제를 폐기하면서 2014년 이후 신규 채용 직원들에게 적용해온 연봉제까지 호봉제로 전환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 시절 도입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와는 별개로, 코레일이 임금 체계 개선 등을 위해 3년 전 도입한 연봉제까지 성과연봉제 폐기를 빌미로 동시에 없애버린 것이다. 근속 연수가 높아질수록 자동으로 임금이 상승하는 호봉제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높여 청년 채용 등 신규 고용 창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7일 코레일 등에 따르면, 코레일 사측과 철도노조는 지난 15일 "(성과연봉제와 관련된) 보수 규정은 개정 이전으로 원상회복하고, (연봉제를 적용해온) 2014년 이후 신규 입사자에 대해서는 호봉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의 노사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번 노사 합의는 지난 7월 홍순만 전 사장이 퇴임해 사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이뤄졌다.
코레일의 호봉제 전환은 국내 민간기업의 임금 체계 개편 움직임과는 정반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상시 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의 호봉제 도입 비율은 2010년 46.3%에서 지난해 21.7%로 하락했다. 한 노동 전문가는 "민간에서는 직무급이나 성과급 등 도입 움직임이 활발한데 코레일은 역주행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코레일 노사의 성과연봉제 폐기 합의로, 공공기관 119곳 중 성과연봉제를 폐기한 곳은 69곳으로 늘어났다.
철도노조는 또, 코레일 사측을 상대로 2014년 이후 입사 신입 사원들에게 연봉제를 도입한 것과 관련해 '연봉제 도입에 따른 임금차액 소송'도 진행 중이다. 호봉제를 적용했으면 더 받았을 임금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2014년 이후 입사 신입 사원에 대해 적용된 연봉제도 사실상 근속 연수에 따른 임금 상승을 일부 보장하고 있어 호봉제와 큰 차이는 없었다"면서도 "연봉제 도입으로 경쟁이 격화된다는 게 철도노조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호봉제에 대한 대안으로 직무급제(업무 난이도와 특성에 따른 임금 결정) 등에 관심을 보여왔다. 정부도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펴면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근로자에 대해서는 호봉제 적용을 지양하라'는 지침을 공공기관 등에 내려보냈다. 지난 3년간 시행해온 연봉제를 호봉제로 전환한다는 코레일 노사의 합의는 정부의 임금 체계 개편 방향성과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레일 노사는 또, 작년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서 직원들에게 지급한 인센티브 205억원은 '자발 반납'하기로 합의했다. 철도노조 조합원 등은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는 차원에서 인센티브를 받는 것을 거부했으나, 당시 코레일 사측은 인센티브를 개별 근로자에게 지급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잘못 지급된 금액에 대한 '환수'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반납하기로 한 것이라 (반납에) 강제성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