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흥해읍의 D아파트는 지난 15일 지진으로 한 동(棟) 전체가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졌다. 현장을 둘러본 전문가들은 이 아파트가 내진(耐震) 설계도 되어 있지 않지만 공사도 부실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가로·세로 철근을 교차시켜 골조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아파트의 벽엔 가로 철근 없이 세로 철근만 들어가 있었다. 지진으로 생긴 30㎝의 틈 사이론 빈 공간이 허옇게 드러났다. 철근은 물론 콘크리트조차 제대로 채워 넣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번 지진으로 포항에선 1200여채 주택과 32개 학교 건물이 파손됐다. 대부분 내진 설계 대상이 아니었지만 부실·날림 공사 탓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둥 3개가 휘어진 장성동 4층 빌라는 가로 철근의 간격이 시공 기준보다 2~3㎝ 더 넓게 듬성듬성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제대로 공사했다면 강진이 발생해도 기둥 위아래 경계에 균열이 생기지만 이 빌라는 부실 공사 때문에 기둥 중간이 엿처럼 휘어버렸다.

외벽 벽돌이 무너져 내린 한동대 역시 외장 마감 공사가 부실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철근에 벽돌을 제대로 연결하지 않았고 접착제를 가장자리에만 대충 바르는 바람에 벽돌이 무더기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현장에 간 전문가들은 "어떻게 이렇게 공사를 했냐"며 혀를 찼다. 어떤 3층짜리 빌라는 외벽의 벽돌이 모조리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시멘트 골격만 앙상하게 남았다. 진앙(震央)에서 200㎞ 떨어진 대전의 초등학교 건물이 금이 가기도 했다. 악명 높은 부실·날림 고질병이 이번 지진을 통해 또 한 번 여지없이 드러났다.

삼풍백화점이 주저앉고 성수대교가 무너진 지 20여년이 지났는데도 부실 공사의 악습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파트 부실시공으로 하자 판정을 받은 건수가 2013년 640건에서 2015년에는 2628건으로 3년 새 4배나 늘어났다. 특히 개인이 건축주가 되어 직접 시공하는 원룸이나 소형 빌라는 비용을 줄이려 외부 감독이나 감리도 받지 않은 채 날림 시공을 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안 그래도 이런 도시형 생활주택의 88%가 1층을 벽 대신 기둥으로만 받치는 필로티 공법으로 지어져 지진에 취약한 구조다. 내진 설계를 해도 날림 공사를 하면 그 효과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