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을 방문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이화여대 학생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나서 "한국은 집단 자살 사회"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간담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입학했지만 취직도 어렵고 취직이 된다고 해도 아이를 갖는 순간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며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한 말이라고 한다. 저출산은 저생산성, 저성장, 재정 악화로 연결되는데 이런 악순환이 바로 집단적 자살 현상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취직은 어렵고 유리 천장은 심하고 사회 안전망은 부족한 우리 사회에 대한 걱정으로 이 행사에 참석한 사람이 모두 함께 울 뻔했다고 한다. 헬조선이라고 할 만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사회복지비 지출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나라는 멕시코밖에 없다. 이번 정부는 사회 안전망 확충에 적극적이어서 다행이지만 복지 프로그램을 단편적으로 확충할 뿐 헬조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지나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헬조선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지극히 실행하기 어렵지만 방법을 생각해 보자. 결혼도 출산도 할 생각이 없는 것은 미래 생계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득이 부족한 모든 이에게 언제나 최소한의 기본 생활은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 생활 자금을 지급해 주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기본 소득 개념이지만, 정부가 여유 자금으로 일부 계층에만 찔끔 주는 방식이 아니다. 미래 불안이 해소될 수 있게 가족과 함께 기본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의 현금을 소득이 부족한 누구에게나 계속 주는 것이 필요하다.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 재원 마련을 위해 적어도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다양하고 복잡한 복지 프로그램을 정리해야 한다. 복지 제도가 복잡하면 전달 비용이 많이 든다. 중간에 새는 돈이 많다는 것이다. 사회 안전망은 교육과 의료 그리고 기본 생활 자금을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둘째, 정부의 각종 보조금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중소기업, 벤처, 기초과학, 문화 예술 창작, 농어촌, 에너지 등 수많은 분야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보조금을 유지하면서 기본 생활 자금을 줄 수는 없다.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산업 육성이나 일자리 창출 등은 민간에 맡겨야 한다. 이런 일에 정부가 나서서 돈을 써봤자 효과는 제한적이고 공정성 시비가 생긴다. 민간의 경제활동을 자유화함으로써 민간이 산업을 발전시키면서 일자리를 만들게 하고 정부는 공정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어려운 이들을 지원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은 중소기업을 여러 가지로 지원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이 도산하면 실직자는 몇 개월분의 실업보험만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자력으로 살아가게 하고 만약 도산할 경우 실직한 근로자 개인에게 다시 취직해서 돈을 벌기 전까지 계속 기본 생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국민은 더 선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문예 진흥 지원 제도를 축소하는 대신 생활이 어려운 예술인 모두에게 기본 생활 자금을 계속 지원하는 것이 예술인들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셋째, 소득이 부족한 이들에게만 지원되도록 조세 제도와 연계해야 한다. 개인이 번 소득을 모두 더한 다음 그 소득이 기본 생활 자금에 못 미치는 이들에게는 그 차이만큼을 정부가 보조해주고, 기본 생활 자금보다 더 버는 이들에게는 그 초과분에 대해서 누진 과세를 해야 한다. 소득이 많은 사람과 그 가족에게 정부가 보조금을 줄 필요도 없고 재원도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둘째는 실행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보조금은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그 기득권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세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문제이다. 지금과 같이 각종 사업 지원에 쓰느냐, 아니면 어려운 사람들이 걱정 없이 최소한의 생활은 할 수 있도록 해주느냐 하는 선택이다. 각종 사업에 지원하는 것은 효과가 불분명하고 헬조선에서도 벗어나게 할 수도 없다. 어렵지만 지금부터라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
몇 달 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책을 냈다. 제목 자체에서 원로 대가의 통찰력이 엿보인다. 국가가 할 일을 다시 정립하지 않으면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전 부총리는 '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은 민간이 할 일이고 정부는 이를 위한 환경을 조성해주고 기득권으로 막힌 사회를 뚫어야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고 말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국가주의 경제 체제 즉 관치 경제 체제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헬조선에서 탈출하려는 의지와 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