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山城)의 나라' 고구려가 쌓은 산성 분포와 유형, 축성법, 변화 과정을 담은 '고구려 산성 연구'(동북아역사재단)가 출간됐다. 동명왕이 졸본 오녀산성에서 세운 고구려는 산성을 방어 시설뿐 아니라 지방 통치의 기반 시설로 활용했다.

지난해 10월 갑자기 세상을 떠난 정원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이 2010년 중국 길림대에 낸 박사 학위 논문을 정리한 이 책은 중국 요령성 동부와 길림성 남부, 한반도의 중·북부에 분포하고 있는 고구려 산성을 분석 대상으로 하고 있다. 국가별로는 중국 137곳, 북한 36곳, 남한 73곳 등 모두 246곳이다.

중국 요령성 등탑현에 있는 연주성. 고구려의 서부 방위 요충이었던 백암성으로 비정된다.

중국 지역의 고구려 산성 조사는 20세기 초 일본인 학자들이 시작했고 1945년 이후 중국 학자들이 뒤를 이었으며 198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북한 지역은 발굴된 곳이 많지 않고 그나마 부분적 조사에 그치고 있다. 남한은 규모가 작은 보루가 대부분이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집중적으로 발굴 조사되고 있다.

고구려 산성은 봉우리와 능선에 쌓아 분지 지형을 띠는 포곡형(包谷形), 산 정상부의 평탄한 지형을 이용하는 산정형(山頂形), 두 유형의 중간 형태인 혼합형으로 나눌 수 있다. 돌로 쌓은 석축성(石築城)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고구려 산성은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기는 기원전 1세기 말 오녀산성에서 시작해 집안 천도 후 환도산성을 만들고 3세기 말 방어 요충지인 신성(新城)을 쌓을 때까지다. 중앙집권 통치 체제를 확립하면서 고구려 산성의 기본 틀이 만들어지는 시기이다. 2기는 4세기 말 요동 지역의 최고 군사 요새인 요동성을 점령하기까지로, 고구려가 선비족 모용씨와 대결을 벌였던 시기다. 3기는 6세기 중엽 평양 장안성을 축조할 때까지다. 이 시기는 방어보다 행정 기능이 강화돼 산성 규모가 커지고 평지에서 접근성이 높아졌다. 4기는 고구려가 멸망하는 7세기 중엽까지로 산성과 평지성이 결합된 평산성(平山城)이 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