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랑대 끝
잠자리야
잠자리야
여기가
바로
너의
잠자리였구나.
―안도현(1961~ )
바지랑대 주인은 누구일까. 아, 잠자리였구나. 아무도 바지랑대 끝이 잠자리의 잠자리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잠자리도 숨기고(?) 있었는데, 그만 시인에게 들키고 말았다. 가을 어느 날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헬리콥터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광경이 시인의 눈 카메라에 쏘옥 들어왔다. 날아다니다가는 꼭 바지랑대 끝에 내려앉아 꼼짝 않고 있는 모습이 찰칵 찍혔다. ‘뭘 하고 있는 걸까? 아, 잠을 자고 있는 거다. 바지랑대 끝은 잠자리의 잠자리구나.’ 시인 눈은 마침내 잠자리의 잠자리를 읽어냈다. 시인 눈은 사물의 의미를 새로이 읽고, 새기고, 캐는 것이 의무이다. 여섯 줄에 동심의 눈이 또록또록하다. 가파른 잠자리에서도 아름답게 자는 잠자리야. 어릴 때 바지랑대 끝의 너를 잡으려고 살금살금 다가가던 내가 문득 머리를 열고 뛰어나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