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몸에 붓으로 칠한 듯 흰색 선이 화려하게 그어져 있다. 멋을 내기 위해서는 아니다. 자신에게 독이 있으니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고 천적에게 알리는 것이다.
에콰도르에 사는 '앤서니 독화살 개구리(Epipedobates anthonyi·사진)'는 에피바티딘(epibatidine)이라는 신경독을 갖고 있다. 천적이 모르고 개구리를 삼키면 에피바티딘이 신경세포 표면의 수용체 단백질에 결합하면서 신경 신호가 차단된다. 그 결과 온몸이 마비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른다. 그런데 정작 개구리 자신은 신경이 멀쩡하다. 왜그럴까.
미국 텍사스대학의 연구팀은 지난달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개구리가 독을 몸에 품고 있으면서도 안전할 수 있는 비결이 신경세포 수용체의 독특한 진화 덕분이라고 발표했다. 이 수용체는 2500개 정도 되는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는데, 독개구리는 이 중 단 3개를 바꿔 에피바티딘이 결합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즉 수용체라는 자물쇠를 아주 일부만 바꿔 독이라는 열쇠가 전혀 들어가지 못하게 한 셈이다. 신경세포는 극히 일부만 변형돼 기억이나 학습 관련 신경 신호는 정상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가 신약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사람에 있는 같은 신경세포 수용체가 통증과 니코틴 중독에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마약성 진통제는 진통 효과는 우수하지만, 중독의 위험성이 존재한다. 독개구리가 자신의 독에 살아남는 방법을 이용하면 독성을 원하는 만큼 줄일 수 있다. 이는 중독성이 없으면서도 효과가 강한 새로운 진통제, 금연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미 독개구리의 신경독을 이용한 수백 종류의 진통 물질을 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