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택씨가 밑그림에 한지를 덧대어 색을 거듭 입힌 성화 '베드로의 통곡'.

10월 11~16일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
성화와 풍경화 등 40점과 스크린작품들
IMF위기 이후 사업 접고 목회자로 나서
알콜·마약중독자 노숙자 수감자 특수목회

권경안 기자

“화려했던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에 의해 철저하게 무너진 것처럼 IMF구제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저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어 놓았던 사업장이 무너졌습니다.”

한 때 사람들은 “우리나라 역사는 IMF구제금융위기의 앞과 뒤로 나뉜다”고 말했다. 그만큼 개인과 집단, 조직과 기업, 국가라는 각 층위마다 체험했던 충격과 파장은 엄청났다고 밖에 달리 설명이 안될 정도였다.

부산에서 종업원이 1000명이 넘은 노동집약적인 사업체를 경영했던 사업가가 구제금융위기 이후 종교인으로 거듭났다. 그 과정을 어떻게 이루 말할 수 있으랴! 하는 것이 그 사업가의 심정이었지만, 이제는 평온을 되찾았고 새로운 목회자(牧會者)의 길을 걷고 있다.

목사로 알코올과 마약중독자, 가족과 멀어진 노숙자들이 모여있는 공동체(인성원)에서 복음을 전하는 예전의 사업가가 바로 권중택씨이다. 그가 오는 11일(수)부터 16일(월)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3층)에서 성화(聖畵)들을 전시한다.

1947년 지리산 자락이자 섬진강변인 마을(전남 곡성)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시절부터 그림에 대한 남다른 실력과 꿈을 보였지만 집안의 반대로 계속하지 못했다. (고교는) 광주에서 미션스쿨을 다녔다. 중등학교 시절 그가 소망했던 모습을 뒤늦게 찾은 것인지 모른다. 그는 지난 7월 20일부터 8월 2일까지 부산KBS홀 갤러리에서 첫 성화전을 열었다. 어린 시절 꿈이었던 화업(畵業)의 길을 가고자 했지만, 목회자의 길에서 만나 그린 그림들. 인생의 물줄기들이 노년에 만난 셈이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은 ‘번창’‘무지개’‘하늘의 별, 바닷가 모래’‘야곱의 꿈’‘광야40년’‘계시(啓示)’‘베드로의 통곡’‘흙에 속한 자의 형상’‘십자가(연작)’ 등 성화가 대부분. 소나기가 지나가고 해 뜨는 풍경, 소나기가 지나간 해수욕장, 정취 있는 늦가을, 눈 내린 정경 등 풍경화도 이채롭다. 성화와 풍경화가 40점 가량. 스마트폰으로 그린 그림을 TV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이게 60점 정도. 최근 4~5년간의 작품들이다.

기법이 독특하다. 밑그림을 거의 완성한 작품위에 한지를 덧대어 또 다시 그려가며 붓과 손가락으로 문질러 드러나게 했다. 묵상하듯 느리게 시간에 공을 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그림을 완성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거듭남과 치유의 효과를 가져다 준다고 그는 말한다.

이와 함께 은유적 의미의‘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 된장, 간장, 고추장, 쌀, 밀가루 등 우리 땅에서 나는 식자재를 물감과 함께 사용하여 색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색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상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의 그림들마다 종교적, 자연적 은유와 상징이 깊이 배어있다.

그가 유난히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강조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는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는 정도의‘선데이 크리스찬’이었다. 사업장이 무너진 사건이 그에게는 억울함이었다. “받을 돈 다 받았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이 땅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방황하다 산속으로 들어갔다. 아내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 산속 기도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40일간 금식기도를 했다. 금식의 고통이 극심했지만, 배고픈 고통이 오히려 시원해지기까지 했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세상의 가치관으로 이기기 위해 살아왔던 지난날들에 대하여, 그는 지난 인생을 통절(痛切)하게 되돌아보았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는 성경 구절이 그를 붙잡았다. 그에게 ‘형상’이란 새롭게 태어난다는 커다란 깨달음, 자각의 상징이 아닐 수 없었다.

산을 내려와 그는 공부에 집중했다. 대학졸업후 사업에 전념해왔던 그가 신학(神學)을 노크했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과 호주에서 신학을 깊이 공부했다. 그래서 60대 중반 목사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사업장이 망하여 새로운 삶으로 거듭났다”며 “BC에서 AD의 삶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성화를 그렸다”고 말했다.

철저하게 망해본 그는 인생의 가장 낮은 곳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찾아가고 있다. 알코올과 마약중독자, 노숙자, 부랑인, 교도소수감자 등을 찾아가는 특수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성화는, 설교로 전할 수 없는 복음의 특수한 부분들까지 보여줍니다.”

그는 “성화를 감상하는 것은 묵상의 기회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앞으로도 계속 성화를 그려 보이겠다”고 말했다.

권중택씨가 그가 그린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늦깎이 목사로 낮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