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정경화 특파원

핀란드가 관광 산업에 눈을 떴다. 여름철에는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의 단체 관광객이 넘쳐나고, 겨울 여행객들은 오로라와 산타클로스를 만나러 라플란드로 떠난다.

2016년 핀란드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580만명. 이 나라 인구(540만명)를 뛰어넘었다. 연간 관광 수익은 2011년 11억유로에서 2015년 14억유로(1조9000억원)로 크게 늘었다.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2.5% 규모다.

관광업 발달은 건설, 교통 등 인프라 산업과 상공업을 자극해 연간 3억9000만유로(5264억원·2015년) 부가가치 창출 효과를 냈다. 관광업계 종사자 14만명 중 30%가 20~30대 청년층이라, 청년 실업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2025년까지 관광산업이 GDP의 3% 규모로 성장하고 일자리 4만개를 추가로 창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카 린틸라 경제고용부 장관은 지난 6일 "관광 산업 확대는 핀란드 경제 회복을 이끌 선봉장"이라며 "한번 다녀간 사람들이 '좋다'고 소문낼 수 있는 수준 높은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관광객 의존도 줄이고 아시아 관광객 늘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핀란드 관광산업은 러시아 쇼핑객이 지탱해 왔다. 2013년 핀란드를 다녀간 러시아 여행객은 160만명으로, 전체 외국인 여행객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러시아 경기가 부진하면서 관광객이 급감했다. 지난해엔 러시아에서 69만명만이 핀란드를 찾았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EU가 러시아에 대해 경제제재를 시작했고, 이에 따라 유가와 루블화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인접한 코트카(Kotka)시 상공회의소 측은 "아직은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러시아 비중이 가장 높지만, 이들이 핀란드에 머무는 시간과 쓰는 돈은 몇 년 새 절반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최근 핀란드 헬싱키 한 잡화점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큰 사진). 지난해 핀란드는 외국인 관광객 580만명이 찾아와, 이 나라 인구(540만명)를 넘어섰다. 중국인 관광객이 2001년 5만3000명에서 2016년 23만명으로 4배 이상 규모로 늘어 증가세를 주도했다. 핀란드는 여세를 몰아 아시아 관광객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관광객과 시민들이 헬싱키 시내 카우파토리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고(아래 왼쪽), 관광객들이 핀란드 골동품 가게를 둘러보고 있다(아래 오른쪽).

러시아 관광객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낀 핀란드 관광업계는 이제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아시아 관광객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핀란드를 찾은 아시아 관광객은 2001년 29만명에서 2016년 86만명으로, 15년 만에 3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중국인은 같은 기간 5만3000명에서 23만명으로 4배 이상 규모로 늘었다. 게다가 중국인 관광객들은 핀란드에서 주로 쇼핑이나 레저 스포츠를 즐기면서 한 번 방문할 때 평균 940유로(약 127만원)를 지출한다. 다른 어느 나라 관광객보다도 씀씀이가 크다. 일본인 여행객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마리메코, 이탈라 등 핀란드 디자인 브랜드와 무민(Moomin) 캐릭터 상품을 양손 무겁게 사들고 가는 중년 여성 관광객이 많다. 이 밖에도 영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6%, 프랑스는 8.6%, 미국은 14.3% 증가했다.

◇정부가 앞장서 체험형 관광 프로그램 육성

지난 2015년 핀란드 정부는 2025년까지 북유럽 국가 중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팔을 걷어붙였다. 우선 관광청 역할을 해오던 '핀란드관광위원회'를 폐쇄했다. 대신 핀프로(Finpro)에 '비지트 핀란드(Visit Finland)'라는 부서를 만들어 관광위원회의 기능을 흡수시켰다. 핀프로는 핀란드 중소기업을 대외에 홍보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정부 투자 기관인데, 외국인 관광객을 유인하는 역할까지 맡긴 것이다. 관광업과 무역, 상공업이 서로 협력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취지다.

비지트 핀란드는 정부로부터 연간 약 1000만유로(약 135억원)를 지원받아, 여행객의 다양한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홍보한다. 헬싱키 디자인 거리 걷기, 사우나 뒤 호수에서 수영하기, 버섯·베리 따서 요리해 먹기, 오로라 및 스키 투어 등 주제별·체험형 여행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교육이나 디자인, 스타트업 분야 글로벌 행사를 자주 개최하는 것도 더 많은 방문객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지난해 핀란드에서는 국제회의와 전시회가 총 651차례 열렸고, 참가자들은 행사가 끝난 뒤 관광을 하면서 1인당 평균 248유로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각국 미디어에 핀란드의 장점을 부각시켜 노출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최근 헬싱키 디자인 위크 행사에 참가한 싱가포르 잡지 기자 엘라이자(25)씨도 "도심에서는 최신 디자인 트렌드를 경험할 수 있고, 20분만 나가면 울창한 숲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인상 깊다"며 "행사 후 3일간 더 머물면서 500유로를 썼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관광을 위한 투자

그렇다고 관광산업을 무작정 확대하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부터 핀란드 경제정책의 기본 철학으로 삼고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 원칙을 관광산업에도 적용하고 있다. 무분별하게 관광지를 개발하거나 관광객을 받아들여 자연환경이나 문화 유적, 지역 경제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핀란드 경제고용부는 지난해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1000만유로를 투자, 국립공원을 새로 조성하고 환경보호 사업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잘 보존된 환경이 결국 중요한 관광자원이 된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핀란드 내 국립공원 40곳과 문화 유적 등을 관리하는 국영기업 메차할리투스(Metsahallitus)도 '지속 가능한 관광 기본 원칙'을 만들어 여행업계와 함께 지키고 있다. '여행객에게 대중교통 이용 장려하기' '자연환경과 문화유적 보호를 위한 사전 지식 제공하기' '지역 주민의 감시와 참여 독려하기' 등이다. 여행사들도 관광으로 발생하는 대기오염과 폐기물을 최대한 줄이고, 전기·물을 절약하는 등 환경보호에 동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