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핵심 관료들의 모임을 내각(內閣)이라고 한다. 영어의 캐비닛(cabinet)을 번역한 것이다. 캐비닛은 캐빈(cabin)과 같은 어원의 단어로, '사적인 작은 공간(방)'을 의미한다. 17세기 초 후계가 없던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왕권을 이어받은 제임스 1세가 잉글랜드의 정치에 익숙하지 않아 자신의 궁정방(캐비닛)에 심복들을 불러 모아 내밀하게 정사를 논하고 보좌를 받았는데, 이때 캐비닛이 '핵심 참모들의 모임'을 의미하게 되었고, 이후 민주정의 발달에 따라 총리 휘하의 장관(Minister)들로 이루어진 공식 정치기구가 되었다.
막부 말기 일본의 지식인들은 유럽식 행정 관료체제 창설을 구상하면서 캐비닛을 어찌 번역하면 좋을까 고민하였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원문에 충실한 느낌으로 '왕실(王室)'을 사용하자고 하였지만,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채택된 것은 내각이다. 왜 하필 내각인가? 명나라 영락제는 궁정 안에 문연각(文淵閣)이라는 도서관 겸 공부방을 차려놓고 신진 학자들을 모아 정사를 보좌하게 했는데, 내각은 이 문연각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곳에서 황제를 보좌한 측근들을 각신(閣臣)이라 불렀고, 내각은 점차 장소의 의미를 넘어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기구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일본 지식인들은 중국 역사에서 영감을 얻어 캐비닛에 해당하는 단어를 내각으로 번역한 것이다. 역사적 연원, 기능 등을 생각해보면 기가 막힌 번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동아시아의 지적 중심이었던 중국에 연원을 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한·중·일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동아시아 공용어로서의 가치까지 지니고 있으니 그 번역의 묘미가 더욱 두드러진다 할 수 있다.
내각이라는 명칭이 정해지니 그다음부터는 오히려 원어인 영어를 넘어서는 효율성이 생긴다. 각(閣)자를 넣어 각료(閣僚), 각의(閣議), 입각(入閣), 개각(改閣) 등의 파생어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서양의 지적 자산이 일본의 지적 자산이 되고, 그것이 다시 동양의 지적 자산이 된 것이다. 한국발(發) 지적 자산이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글로벌 공공재가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