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숙 前 초등학교 교사

초등학교 3학년 수진이는 아침마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교실 문을 밀어젖힌다. 오늘은 누구와 한바탕 시작할까 시선이 한 곳으로 꽂힌다. 쉬는 시간이면 어느새 비명이 들린다. 복도로 나가니 아이가 할퀸 얼굴을 감싸고 울고 있다. 담임으로서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기를 바라는, 긴장된 생활의 연속이었다. '말괄량이 삐삐' 같은 아이였다.

수진이는 아기 때 부모가 이혼해 아빠 쪽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고모할머니가 맡아 길렀다. 말썽을 일으키는 이유는 부모의 애정 결핍에서 오는 외로움이다. 나도 세 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외가에서 살았다. 목이 쉬도록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혼자 집을 지킬 때면 마루 밑 신발을 모두 꺼내 놓았다. 무서워서다. 그리곤 혼자가 아니라는 듯 할머니 옷을 입고 이모들 목소리를 흉내 내었다. 마당에 옹기종기 꽃들을 보면 가족이 생각났다. 엄마가 데리러 올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 기억이 결손가정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수진이에게 꾸중은 자제했다. 급식실에 마주 앉아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수학이나 글짓기를 잘한다고 아낌없이 칭찬도 해주었다.

어느 날, 수진이 일기장을 보았다. '창밖을 바라보니 비가 내린다. 나도 모르게 내 눈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빠가 소식이 없다!' 수진이는 세 할머니와 살고 있다. 말투도 행동도 애어른 같다. 엄마는 얼굴조차 모르고, 의지해온 사람은 아빠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소식이 끊겨 당황스러운 마음을 적은 것이다. 내가 물으니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며 눈물을 떨어뜨린다. 천하에 무서운 것 없던 모습은 간데없이 어깨가 축 처졌다. 나는 "곧 추석인데 그때도 오시지 않으면 선생님이 꼭 알아내 주겠다"고 안심시켰다.

추석을 지내고 만난 수진이는 밝았다. "추석날 아침 아빠가 오셨어요. 오토바이 사고를 냈는데 치료비를 줄 수 없어 형무소에 갔었대요. 내가 가장 걱정됐대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다. 우린 더 친해졌다. 등교하기 바쁘게 지난밤 할머니들 얘기를 쏟아내고, 매일의 일을 일기 쓰듯 보고했다. 그러더니 생활부장처럼 장난치는 아이들을 나무란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나는 무료 급식을 신청하고 집에 컴퓨터도 놓아 주었다. 글짓기에 소질 있으니 재능을 발휘하게 하고 싶었다. 학급에서 쌀을 모아 전달한 적도 있다. 고모할머니는 "더 어려운 아이에게 주라"며 한사코 사양하였다. 나는 이번 방학에는 꼭 아빠와 지내게 해달라고 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온 수진이는 행복한 모습이었다. 작년 3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졸업 무렵엔 이런 편지를 받았다. "어두웠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려서 하얀 눈꽃송이가 뒤덮여 있는 넓은 들판이 되었어요. 학교에 다니는 것과 친구들이랑 지내는 것이 즐거워요. 공부도 더 잘하게 되었어요.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엄마같이 대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 후로도 수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10여 년이 흘러 얼마 전, 길에서 우연히 고모할머니를 만났다.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고 했다. 고모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고 했다. 교사에게 더 기쁜 일이 있으랴. 몇 년 후면 직장도 갖고 사랑하는 사람 만나 결혼도 하겠지. 어서 그런 소식이 들리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