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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중학생과 수차례 성관계한 사실이 발각돼 재판을 받던 30대 학원 여강사가 11일 2심(인천지법 형사합의3부)에서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사건 브리핑
-2015년 서울의 한 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던 권모(당시 31세)씨가 중학교 2학년(만 13세)이었던 수강생 A군에게 "만나보자" "같이 씻을까"라며 문자메시지로 유혹한 뒤,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4차례 성관계를 가짐.
-이 사실을 안 A군 엄마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에 대한 음행강요·매개·성희롱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인천지법 부천지원)가 권씨에게 징역8월·집행유예2년에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선고.
-권씨, "사랑해서 자발적으로 맺은 성관계일 뿐, 학대가 아니다"라며 항소, 11일 2심에서 징역 6개월로 법정구속.

혹시 기억하는 독자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1~2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들이 터져 한동안 인터넷과 뉴스 프로그램이 시끄러웠다는 것을.

☞1~2년 전 불거진 유사 사건들
①지난해 7월 한 언론이 대구의 중학교 기간제 음악교사(당시 33세)가 남학생 B(15)군과 1년 간 사귀며 차량에서 성관계를 가졌다는 보도를 하면서 대구시교육청과 대구 남부경찰서가 진상파악에 나서.
-당시 교사는 B군을 '서방님'이라고 불렀고, B군은 교사에게 반말을 썼던 것으로 알려져 그들의 '기이한 관계'가 더욱 논란이 됨.
-최근 경찰에게 사건 처리 결과를 물었더니 "당사자 두 명 모두 '성관계를 한 적 없다'며 완강하게 부인하는 바람에 증거 불충분으로 내사 종결했다"고.

②지난해 6월 부산의 30대 학교전담경찰관(스쿨폴리스) 2명이 각각 17세 여고생들과 수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드러나 경찰청이 발칵 뒤집혀.
-정모(당시 31세) 전 경장은 상대 여학생이 끝까지 피해 진술을 거부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무혐의)되고, 김모(당시 33세) 전 경장만 재판에 넘겨져.
-최근 김씨에 대한 1심 결과가 나옴. 징역 1년6개월·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명령을 선고 받아.

③15세 소녀 C양에게 '연예인을 시켜주겠다'고 접근해 수차례 성폭행하고 임신시킨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12년, 징역 9년을 선고받았던 연예기획사 대표 조모(48)씨에 대해 2015년 대법원이 '사랑해서 성관계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
-대법원은 C양이 조씨가 구속되자 수차례 접견하고, 애정표현을 담은 서신을 보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이로 보인다며 무죄 판단을 해.
-파기환송심에서 무죄가 나오자 검찰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법원에 사건을 '재상고'하면서 현재까지 심리가 진행 중.

미성년자와의 성관계가 문제가 된 이들의 주장은 대개 비슷하다.
"서로 사랑해서, 미성년자의 자발적 의사로 성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성관계를 한 적 없다'고 말을 맞춘 일부는 수사망을 빠져나가기도 하고, 일부는 집행유예, 일부는 감방 신세를 진다. 국내에선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를 어떻게 의율(擬律)하길래 형사 처분 결과가 달라지는 걸까. 이 조선일보 양은경 법조전문기자에게 물었다.

-국내에선 19세 미만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를 한 성인을 어떻게 처벌하고 있습니까.
"우선 형법 305조는 미성년자가 '13세 미만'일 경우 성관계를 한 사실 만으로 무조건 처벌합니다. 폭행·협박·위계·위력 같은 요소가 없더라도 성관계가 있었다면 처벌 대상입니다. '13~18세' 미성년자는 폭행·협박이 있었으면 당연히 처벌을 하고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청소년을 속이거나 어른의 지위를 이용하는 위계(僞計)·위력(威力)으로 성관계를 하게 되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합니다."

-그 말은 결국 성인이 13~18세 청소년과 '합의'해 성관계를 한다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그동안은 처벌 규정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영어강사 권씨는 구속이 됐죠. '아동복지법'이 적용됐기 때문입니다. 아동복지법을 적용하는 건 아직까지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아동복지법 17조는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의 학대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재판부는 권씨와 남학생의 성관계를 일종의 아동학대, 성학대로 판단했습니다. 만일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았더라면, 권씨가 처벌받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미성년자와 합의된 성관계'를 주장한 어떤 이는 경찰 단계에서 사건이 끝나고, 어떤 이는 대법원까지 갔다가 무죄 판단을 받았습니다. 이들에겐 무슨 차이가 있었던 겁니까?
"결국 범죄 행위 '입증'의 문제였습니다. 사건이 경찰 단계에서 끝난 음악교사는 당사자가 모두 성관계 사실 자체를 부인한 까닭이 컸습니다. 목격자나 객관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이 '그런 적 없다'고 부인하면 더 이상의 수사 진행이 어렵습니다.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기획사 대표는 성관계 사실 자체는 인정 됐지만, 그 관계의 성격을 법원이 달리 판단했습니다. 여중생은 '사실상 저항할 수 없는 성폭행 상황'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교도소 접견 횟수·편지 등을 들어 '사랑'으로 보인다고 한 겁니다."

-학원 강사 권씨는 "A군은 키가 180㎝가 넘고, 육체적으로 상당히 성숙했다. 비록 만 13세 소년이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사랑'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도 구속된 걸 보면 법원이 권씨의 '사랑' 타령을 받아들이지 않은 겁니까?
"그렇죠. 사랑이 아닌 '성학대'라고 본 겁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미성숙한 상태의 아동인 피해자의 의사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핑계 삼아 자신의 성욕을 충족한 것에 대해 면죄부를 받으려 한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은 아동복지법의 입법 취지상, 아동이 성관계에 분명하게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거나 육체적 고통이 따르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학대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불완전한 상태라고 본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선 남학생 A군이 수사기관에서 '성관계 당시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고 진술한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이에 반해 연예기획사 대표의 '사랑'은 2015년 대법원이 인정을 한 셈입니다. '주관적 감정'을 법률가가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게 있는 건가요?
"법원의 판단은 '사랑'이라는 주관적 감정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성행위 성격에 대한 평가로 봐야 합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성관계의 강제성 여부입니다. 1·2심은 성폭행을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다르게 봤습니다. 연예기획사 대표 조씨가 다른 사건으로 수감돼 있던 4개월 동안 피해자가 약 100통 가까운 서신을 보내고, 거의 매일 접견을 간 점에 주목했죠. 이를 성관계의 강제성이 없었다는 '간접 증거'로 본 겁니다. 문자 메시지 중에는 '아무한테도 뛰지 않던 심장이 오빠야 옆에 있으니까 막 뛰더라고요' 같은 내용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이런 판단에는 많은 비판이 따랐습니다. 법원이 피해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거죠. 피해자는 '조씨 강요로 서신을 억지로 작성했다'는 주장했습니다. 파기환송심에서 조씨가 접견 중 서신 작성을 강요하는 내용의 증거도 제출했습니다. 사건 당시 피해자(15세)와 조씨(42세)의 나이 차이, 연예기획사 대표와 여중생이라는 신분, 만난지 4일만에 성관계가 이뤄졌다는 점도 성관계가 자의(自意)로 이뤄졌다고 보기 힘든 정황들입니다. 피해자의 증거 제출에도 불구하고 파기환송심에서 조씨에게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이 상고해 다시 대법원에 올라가 있습니다."

-폭행·협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교사·학원 강사·스쿨폴리스·연예기획사 대표 같은 직업은 '위력 관계'가 작동해 미성년자를 '현혹하기 쉬운' 입장에 있는 것 아닙니까?
"네. 스승·연예기획사 대표 등의 관계를 '위력'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위력이란 '지위·권세를 이용하여 상대방의 의사를 제압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해요. 문제는 위력 개념이 명확치가 않고, 입증하기가 까다롭다는 겁니다. 그래서 1심에서 실형이 나온 스쿨폴리스 사건, 구속된 학원강사 권씨 사건에는 '아동복지법'을 적용했습니다."

-뉴스를 보다보니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떠올랐습니다. 마크롱이 열다섯살 때, 남편과 아이가 있는 스물다섯 연상 연극반 교사 브리지트 트로뉴 여사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의 부모가 놀라 마크롱을 파리로 유학 보내며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고도 했지만, 결국 결혼에 이르렀는데요. 만약 이들이 한국인이었다면 트로뉴 여사가 법적으로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한국이었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는 힘들 수 있어요. 마크롱이 처음부터 적극적이었습니다. 마크롱이 만난지 이듬해 트로뉴에게 자신을 위한 희곡을 써달라고 요청했고, 둘이 희곡 대본을 매개로 '믿기 힘든'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부모가 마크롱을 파리로 보낸 후에도 마크롱은 트로뉴에게 엄청난 전화공세를 했다고 해요. 물론 트로뉴도 이혼하고 마크롱을 택했으니 두 사람의 마음이 맞았다고 봐야겠죠.
영어학원 강사 권씨 사건의 경우, 권씨가 먼저 학생에게 선정적인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게다가 피해자가 당황하며 거부한 듯한 정황도 있습니다. 마크롱·트로뉴 스토리와는 다르죠. 결과적으로 트로뉴의 가정이 깨졌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여지는 있어도 '청소년에 대한 부적절한 접근'이라며 법적으로 문제삼을 수는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