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앤, 패션 렌털 서비스 8개월 만에 가입자 15만 명 돌파
리본즈, 명품 렌털 서비스 6개월 만에 누적 매출 2억… 샤넬 백이 월 7만9천 원
남이 입던 옷 찝찝해… 맞춤 서비스 접목한 셔츠 정기배송 스타트업도 등장

‘패션은 사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을 내세운 프로젝트 앤

“미연씨는 월급으로 옷만 사는 거야?”

회사원 이미연 씨(28)는 자주 바뀌는 옷차림 탓에 종종 ‘쇼핑광’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그는 오늘 50만 원짜리 카사렐 원피스에 200만 원대 생로랑 가방을 멨다. 모두 패션 렌털 사이트에서 대여한 것으로, 가방과 원피스를 10일간 빌리는 데 총 7만 원이 들었다.

“홍보 업무를 맡고 있어 차려입어야 할 일이 많은데, 매번 비싼 옷을 구매할 순 없잖아요. 이렇게 렌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합리적인 거 같아요.”

패션 시장에 옷이나 가방을 빌려 입는 렌털 소비가 늘고 있다. 자동차나 집을 공유하듯, 패션에도 공유경제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트렌드에 민감하고 소유보다는 경험의 가치를 중히 여기는 20~30대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두드러진다.

◆ 프로젝트앤, 리본즈 등 패션 렌털 서비스 확산… 구찌 백을 월 8만 원에

SK플래닛이 지난해 9월 선보인 패션 렌털 서비스 프로젝트 앤은 출시 8개월 만에 가입자 수가 15만 명을 돌파했다. 현재까지 이용권 판매 누적 건수는 1만4000건으로, 구매자의 80% 이상이 재이용할 만큼 반응이 좋다. 프로젝트 앤은 의류, 가방, 액세서리 등 180개 브랜드, 28000여 개 이상의 상품 대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찌, 생로랑, 페라가모 등 명품 가방부터 푸시버튼, 오프닝세레모니, 렉토 등 인기 브랜드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지난 3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열린 프로젝트 앤 팝업스토어

대여 방법은 모바일 앱을 통해 월 정액권을 끊어 옷을 빌리거나, 1회 이용권으로 10일간 이용하는 방식 두 가지다. 월 정액권의 경우 옷 4벌(또는 가방 3개)을 빌리면 8만 원, 8벌을 빌리면 13만 원이다. 원하는 옷을 골라 입은 후, 새로운 옷과 교환하면 된다. 세탁을 할 필요도 없다.

프로젝트 앤은 음악이나 영화를 스트리밍하듯, 패션도 소유보다는 즐기는 소비문화가 확산하는 것에 착안해 ‘패션 스트리밍’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김민정 SK플래닛 커머스이노베이션본부장은 “패션 시장도 단순히 옷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여러 가지 스타일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소비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명품 전문 온라인 쇼핑몰 리본즈는 올해 1월 명품 렌털 서비스 온리(ON:RE)를 선보였는데, 6개월 만에 누적 매출 2억 원을 돌파했다. 월정액 멤버십으로 진행되는 온리는 월 7만9천 원으로 최대 2개의 명품 가방을 이용할 수 있다. 명품 전문 쇼핑몰답게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한 것이 특징이다. 샤넬, 에르메스를 비롯해 최신 유행하는 구찌의 디오니소스 백 등 명품 가방 960여 점을 취급한다.

리본즈 렌털 서비스 온리 이미지

노대현 리본즈코리아 마케팅팀장은 “현재까지 누적 주문 건수는 3000여 건으로, 매달 평균 55%의 매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예전처럼 명품백 하나를 사서 계속 들고 다니기보다는, 다양한 명품을 저렴하게 즐기는 소비문화가 퍼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 패션 소비도 소유에서 경험으로… 패션 렌털, 저성장시대 체험 경제 욕구 만족

패션 렌털 서비스는 국내에선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단계지만,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자리를 잡은 개념이다. 2009년 창업한 미국 패션 렌털 업체 ‘렌트 더 런웨이’는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빌려주는 서비스로, 지난해 거래액이 1억 달러(약 1100억 원)를 돌파했다. 현재 회원 수는 600만 명에 달한다. 영국의 걸 밋츠 드레스, 유럽의 시크 바이 초이스, 일본의 에어 클로젯 등도 패션 렌털 서비스로 성공을 거뒀다.

전문가들은 패션 렌털은 저성장시대, 소비자들의 체험 경제와 미니멀 라이프 욕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소비 형태라고 말한다. 특히 주머니 사정이 어렵지만, SNS로 취향을 공유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렌털은 합리적인 ‘옷 입기’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패션 렌털 업체 렌터 더 런웨이는 작년 1억 달러 매출을 돌파했다.

3개월째 명품 가방을 대여해 들고 있다는 회사원 박현아 씨(32)는 “큰 맘 먹고 2~300만 원 정도 하는 명품 가방을 사도, 실제로는 몇 번 사용하지 못하고 유행이 지나면 옷장 속 구닥다리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차라리 유행에 맞춰 빌려 쓰는게 훨씬 가성비가 높은 거 같다”라고 말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저서 트렌드코리아2017에서 “젊은 세대의 소유 개념은 전통적인 의미와 다르다. 목돈을 들여 구입하기 보다는 리스나 렌트 등 공유제도를 이용해 합리성을 추구한다. 이들은 소유보다는 공유와 향유 경제에 잘 적응되어 있어 소유에 대한 강박이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덜하다”라고 밝혔다.

◆ 남과 함께 옷 입기 찝찝해 반감도… 위탁, 맞춤 접목한 차별화된 렌털 서비스도 등장

하지만 아직은 옷을 공유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문소영 씨(36)는 “다른 렌털 제품과 달리 옷은 피부에 닿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사용했던 것을 입는 게 찝찝하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한정현 씨는 “한 달에 8만 원 정도면 싼 가격이 아닌데, 그렇게까지 빌려 입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더클로젯의 렌털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들의 후기

이 같은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해 차별화된 패션 렌털 서비스를 선보이는 스타트업도 등장하고 있다. 위클리셔츠는 일주일에 3~5벌의 셔츠를 배송해주는 남성 셔츠 정기구독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데, 다른 사람과 함께 셔츠를 입는 것을 꺼리는 고객을 위해 내 전용 셔츠와 맞춤 셔츠 등 프리미엄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명품 가방과 원피스를 빌려주는 더클로젯은 대여와 함께 위탁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공유’라는 개념을 확대해 빌려 입을 뿐만 아니라, 빌려주는 플랫폼을 만든 것이다. 고객들은 사용하지 않는 가방이나 원피스를 위탁하고, 더 저렴하게 렌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물건을 많이 내놓면 공짜로 빌릴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공유경제가 번성하면 패스트 패션 중심의 패션 시장이 바뀔 수 있으리란 예측도 나온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트렌디한 옷을 싸게 사려는 소비자들 덕에 패스트 패션이 부상했다. 하지만 렌털 시장이 활성화되면 고급스러운 패션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