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은 화사한 플라워 프린트의 봄버가 유행할 것으로…'

'슈트 위에 야상… 당신, 멋 좀 아는군요'

'쌀쌀한 가을에는 셔츠 위에 컬러풀한 카디건을 걸쳐 보온성을 높이고…' 

패션을 조금 아는 당신이라면 위에 언급된 옷들의 생김새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패션을 모르는 당신이라도 위의 옷들을 이미지로 본다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플라워', '컬러풀' 같은 단어로 수식되긴 했지만, 위의 옷들은 모두 '군대 패션'에서 유래된 옷이다. '군대'라고 하면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 카키색, 얼룩덜룩 위장을 위한 카무플라주 정도 생각나지만, '군대 패션'은 패션의 발전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밀리터리 룩'이라는 말도 있지만 엄밀하게는 밀리터리 룩과 군대 패션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 군대 패션은 역사를 통틀어 군대에서 사용되고 발전 된 옷을 말하고 밀리터리 룩은 군복의 느낌을 가미한 스타일을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입던 재킷을 재해석해 사랑스러운 분홍색을 가미하고 꽃무늬를 넣게 되면 더이상 밀리터리 룩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갈 것이다.

왜 '군대 패션'인가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오랫동안 그 실용성과 기능성을 테스트 받은, 쉽게 말해서 검증된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군대에서 유래된 패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베레모 (Béret)

주로 펠트로 만들어진 챙이 없고 둥근 형태의 모자. 원래 프랑스 바스크 지방의 농민들이 썼다. 화가들이 애용했던 머리 끝에 작은 꼭지가 달린 형태의 베레모가 바스크 스타일. 1880년대 프랑스 보병들이 처음으로 군용 베레를 사용했다. 이후 대량 생산이 쉽고, 통신장비를 쓰기 편하다는 장점이 알려지면서 다른 나라 부대로 확산됐다. ▶더보기

워치 캡 (Watch cap)

진한 남색의 니트로 된 미 해군의 수병이 선상에서 쓰는 모자를 말한다. 머리 위쪽이 남는 부분 없이 머리에 꼭 맞게 쓴다. 요즘 많이 쓰는 비니 보다 짧은 스타일이다.

트렌치 코트 (Trench coat)

1차 대전 당시 참호(trench)의 진흙탕과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트렌치코트는 '바바리' 또는 '버버리'라 불린다.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인 1914년 토머스 버버리(버버리의 창립자)가 영국 육군 성의 승인을 받고 군용 레인코트, 즉 트렌치코트를 제작하면서 버버리가 트렌치코트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지금도 정통 트렌치코트에는 당시에 만들어진 디테일이 남아 있다. 소총 개머리판을 밀착시키기 좋게 어깨에 덧댄 천이나 수류탄을 걸 수 있도록 허리띠에 달아 놓은 D자형 고리 같은 것들이다.

플라이트 재킷 (Flight jacket)

MA-1 보머(Bomber)재킷으로 알려졌다. '보머'는 비행 도중 폭탄을 떨어뜨리는 폭격기를 의미하며, 세계대전 때 공군 조종사들이 이 재킷을 처음 착용한 것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조종석에서 거추장스럽지 않도록 품은 넉넉하고 소매단과 밑단에 밴드가 달렸으며 대체로 길이가 짧고, 높은 고도에서도 추위에 견디게끔 두꺼운 가죽을 쓴 옷들도 있다. 선명한 오렌지색 안감을 댄 재킷도 있는데, 조난당했을 때 재킷을 뒤집어 구조 신호로 활용하도록 한 것이다.

무스탕이라고 알려진 재킷도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입던 재킷으로 B-3재킷으로도 알려져있다. 무스탕은 원래 프랑스어 무통(Mouton)이 맞는 표현이며 더블페이스 재킷이라고도 한다. 털을 깎지 않은 양가죽을 그대로 살려 가죽 표면은 부드럽게, 속의 털은 짧게 깎아 가공한 재킷이다.

야전 상의 (Field jacket)

M65 필드 재킷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5년 미군에게 지급된 보급품이다. 베트남 전쟁 기간 미군이 널리 입었는데, 남베트남 중부 고원지방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스콜 뒤에 오는 추운 날씨로부터 병사의 체온을 따뜻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군인들이 제대하면서 민간에도 널리 보급됐다.

이 재킷의 실용성과 기능성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M65와 같은 디자인 또는 살짝 변형된 제품을 만들어냈다. 양쪽 가슴과 허리춤에 큼직한 주머니가 있고 목덜미에는 접어 넣을 수 있는 모자가 달린 다목적 재킷이라면 오리지널 M65 재킷의 후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더보기

피코트 (Pea coat)

더블 브레스티드(double-breasted)로 앞에 두 줄의 단추가 달려 있으며 해군 수병들이 입었던 짧은 코트다.  영국 해군의 코트가 미국 남북전쟁 이후 퍼져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두꺼운 모직물로 만든다. 사고 위험이 도사리는 선상에서 두툼한 이중 여밈으로 신체를 보호하고 천을 이중으로 덧대 칼바람으로부터 체온을 보존하는 효과를 노린 것에서 시작됐지만, 이젠 기능보다 장식적 용도가 됐다.

여전히 겨울용 겉옷으로 사용하지만 제복뿐만 아니라 성별, 나이와 관계없이 일상복으로 두루 사랑받고 있다. 지금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해군에서 정식 유니폼으로 채택하고 있다.

더플코트 (Duffle coat)

한국 사람들에게는 더플코트 하면 '떡볶이'가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후드가 달린 싱글 코트로 단추 대신에 끈으로 여미게 된 것이 특징이다. '떡볶이 단추'(토글 ,toggle)라고 부르는 길쭉한 단추에 고리 끈으로 여민 것들이 많다. 거친 모직물로 만들어져 방한에 치중한 더플코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용 코트로 영국 해군이 착용하며 일반 대중들에게 보편화하기 시작했다.

카디건 (Cardigan)

1890년대 초부터 영국에서 입기 시작하였는데, 앞트임식 스웨터의 총칭으로 크림전쟁에 참가했던 영국 '카디건 백작' 제임스 브루드넬이 즐겨 입었던 옷이다. 브루드넬의 경기병대가 러시아 포대에 돌격한 일이 널리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단추로 여미는 디자인은 머리 모양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고, 부상 당한 병사들을 치료할 때 쉽게 입고 벗을 옷을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설도 있다.

카고 팬츠 (Cargo pants)

카고란 '화물선'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화물선의 승무원이 작업용으로 입는 바지였다. 통이 넓고 양쪽 다리에 패치 포켓(덧붙인 주머니)이 달려있는 것이 특징이고 우리나라에서는 '건빵바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활동성과 기능성이 좋아 캐주얼웨어로 입기에 적당하다.

데크 슈즈 (Deck shoes)

보트 슈즈라고 불리기도 하는 데크 슈즈는 선원들이 신던 신발에서 유래했다. 갑판(deck)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밑창이 고무로 만들어졌으며, 몸통은 가죽이나 캔버스 소재가 주를 이룬다. ▶더보기

데저트 부츠 (Desert boots)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이 사막을 진군하는 데에 이용한 군화다. 사막을 걷는 동안 모래가 신발 속에 들어가지 않게 발목 부분을 높이고 스웨이드 소재로 만들어 모래에 가죽이 긁혀도 눈에 띄지 않게 했으며, 굽을 낮게 하고 신발을 신고 벗기 편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컴뱃부츠 (Combat boots)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에서 생산한 것으로서, 다른 이름은 워커다. 전투 또는 힘든 노동을 할 때 신던 신발로, 두꺼운 가죽과 묵직한 밑창이 특징이다. 또 도구가 발 등에 떨어질 경우 발을 보호하기 위해 앞코가 단단하게 제작됐다. ▶더보기

카무플라주 룩 (Camouflage look)

군대에서 유래된 패션 중 옷의 형태가 아닌 특정 무늬가 들어간 스타일을 지칭한다.  카무플라주는 원래 '위장', '변장'이란 뜻의 프랑스어로 몸의 색깔을 주변 환경과 유사하게 위장해 적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것을 말하며, 패션에서는 얼룩덜룩한 보호색이나 보호무늬가 들어간다. 징병제인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카무플라주가 군대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요소가 되어 큰 유행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밀리터리 룩이 유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무늬다.  ▶더보기

한 시대의 문화나 트렌드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패션에서 유행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을 것 같은 '군대'의 복장이 패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옛날과는 많이 달라진 지금의 군복은 훗날 어떤 트렌드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