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30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뮤직텐트에서 열린 제13회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저녁 공연. 벨리니 오페라 아리아와 베토벤 C장조 미사 등이 연주됐다.

오는 26일 본격적으로 막 올리는 제14회 평창대관령음악제(예술감독 정명화·정경화)의 올해 주제는 '볼가강의 노래'다. 2013년 북유럽, 2014년 남유럽, 2015년 프랑스, 지난해 독일·오스트리아에 이어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고른 지역이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유럽인 러시아는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와 쇼스타코비치 등 역사상 위대한 음악가들을 배출한 클래식의 본고장. 마침 지난해 8월 러시아의 마린스키 극동(Far East) 페스티벌과 MOU를 맺은 음악제는 지휘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다진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러시아 작곡가 13인의 작품 30곡을 포함, 총 37인의 작품 62곡을 조명할 계획이다.

대관령을 물들일 러시아

① 지휘자 조르벡 구가예프. ② 피아니스트 스티븐 코바체비치. ③ 보로딘 콰르텟. ④ 피아니스트 손열음. ⑤ 첼리스트 로런스 레서. ⑥ 첼리스트 정명화.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와 강원도 일대에서 펼쳐지는 올여름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가장 눈길 끄는 무대는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프로코피예프의 코믹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29일 뮤직텐트)이다. 1921년 12월 30일 미국 시카고의 오페라극장에서 당시 서른이었던 프로코피예프가 베네치아 극작가 카를로 고치의 동명 동화를 바탕으로 초연한 이 오페라는 오직 웃음으로만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왕자의 모험을 담고 있다.

천하가 내 손안이어도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인가. 일국의 왕자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나날이지만 왕자는 우울증에 걸려 손쓸 길이 없다. 웃어버리면 나을 병이라 왕과 재상, 점술가까지 머리를 맞대 익살맞은 연회를 열지만 왕자는 웃지 않는다. "오, 나를 침대로 데려가줘"라며 처량하게 노래할 뿐. 그때 더러운 차림의 한 여인이 비틀대며 걸어온다. 신하들이 쫓아내려는 순간 여인이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며 발라당 넘어진다. 그 모습을 본 왕자가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모두가 기뻐하며 춤을 추지만 여인은 왕자를 노려보며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의 저주를 걸어버린다. 공포에 찬 음악. 왕자는 무엇엔가 홀린 듯 "세 개의 오렌지!"를 계속 외치고, 주변의 만류를 뿌리친 채 오렌지가 있는 크레온타 성으로 여행을 떠난다.

지난해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저녁 공연이 열린 뮤직텐트의 바깥 모습.

러시아 정상급 교향악단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오케스트라가 내한해 조르벡 구가예프의 지휘로 '세 개의…'를 연주한다. 테너 일리야 셀리바노프, 소프라노 올가 보브로브스카야 등 마린스키 오페라단의 주역가수 14인도 총출동해 서정적인 아리아와 춤곡, 팬터마임까지 변화무쌍한 매력이 가득한 이 오페라를 콘서트 형식으로 들려준다.

마린스키 오페라단의 주역 가수 14인(30일 뮤직텐트)은 무소륵스키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차이콥스키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 림스키 코르사코프 오페라 '차르의 신부' 등 러시아 오페라의 주요 아리아와 러시아의 민요, 차이콥스키의 '모스크바 칸타타' 등 러시아 음악들로 또 다른 무대를 꾸민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보로딘 현악사중주단(27·29일 콘서트홀)이 들려주는 쇼스타코비치와 하이든의 실내악 연주도 놓칠 수 없다.

대관령을 달굴 음악가들

평창은 해발 700m 대관령에 자리해 있다. 한여름에도 평균 기온이 21.9도에 그쳐 선선하고, 산천초목과 풍성한 음악이 피로를 씻어준다. 평소라면 쉽게 만날 수 없는 정명화, 정경화 등 음악가들을 공연장뿐 아니라 호텔 로비, 레스토랑에서도 종종 마주칠 수 있다.

러시아 대가들의 명작을 오롯이 구현해내기 위해 일군의 명(名)연주자들이 몰려온다. 피아니스트 스티븐 코바체비치, 첼리스트 로런스 레서, 비올리스트 가레스 루브 등은 올해 처음으로 음악제를 찾는다. 스티븐 코바체비치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28일 콘서트홀)을 연주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보리스 브로프친과 첼리스트 지안 왕, 루이스 클라렛도 음악제를 다시 찾는다. 음악제 부예술감독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을 필두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신아라·신지아, 비올리스트 박경민·이한나·이화윤, 첼리스트 강승민·고봉인·김두민, 피아니스트 김다솔·김태형 등 국내 젊은 연주자들도 대거 참여한다. 그중에서도 현악과 피아노, 타악기로 편곡해 선보이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8월 5일 뮤직텐트)과 아렌스키 피아노 삼중주 1번(26일 콘서트홀), 타네예프의 피아노 오중주(8월 2일 콘서트홀)와 말러 피아노 사중주(29일 콘서트홀), 슈트라우스의 피아노 사중주(27일 콘서트홀), 멘델스존의 피아노 육중주(28일 콘서트홀)는 좀처럼 듣기 힘든 작품들이다. 올해 음악제가 위촉한 김택수의 '평창을 위한 팡파르'(8월 2일), 윌리엄 볼컴의 '6중주'(8월 6일), 장 폴 프넹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카페 푸시킨'(8월 3일)도 기대를 모은다. 특히 첼리스트 정명화와 로렌스 레서, 루이스 클라렛 등 세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포퍼의 레퀴엠(27일 콘서트홀)은 이번 음악제의 백미가 될 것이다.

사전에 예약하지 않았더라도 현장에서 음악회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자녀를 데리고 온 가족 관객들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연도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음악학교에 학생으로 참가한 젊은 음악가들이 음악제 사이사이 콘서트홀이나 평창홀에서 들려주는 '떠오르는 연주자 시리즈' 또는 '학생 음악회'가 그 무대다. 음악제가 열리는 마지막 일요일(8월 6일 콘서트홀)에는 음악평론가 장일범의 진행으로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가 열린다. (033)240-1363 www.gmmfs.com

평창대관령음악제 사무국 임직원들이 추천한 맛집

고향이야기=알펜시아리조트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생등심 한우와 곤드레돌솥밥으로 유명하다. 정선에서 따온 계절 나물 반찬들이 입맛을 돋운다. 곤드레밥을 다 먹은 뒤 솥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드는 숭늉까지 알차다. (033)335-5430 www.고향이야기.kr

황태회관=강원도 겨울바람에 얼려 꾸덕꾸덕하게 말린 황태를 구이와 찜, 전골, 불고기로는 물론이고 황태강정, 황태까스로도 다채롭게 맛볼 수 있다. 흰 쌀밥 위에 황태구이 한 점 척 올려서 막걸리 곁들인 맛이 일품이다. (033)335-5795

대관령한우타운=평창·영월·정선에서 사육하는 소를 생산·관리하는 평창영월정선축협이 직영하는 정육 식당이다. 질 좋은 대관령 한우를 실속 있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숯불에서 직접 구워먹을 수 있어 더욱 맛있다. (033)336-2150

봉평막국수=평창군 봉평면에 자리한 전통 막국수 전문점. 메밀막국수와 메밀묵사발, 메밀묵, 메밀전병, 메밀전 등 다양하다. 메밀 면은 주문받으면 그때그때 반죽을 해서 뽑고, 육수는 인공 조미료 대신 숙성시킨 양파즙을 가미해 맛이 깔끔하다. (033)335-9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