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을 태운 헬기가 서울 상공으로 솟구쳤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용산 미군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을 때였다. 헬기 창문을 통해 용산 일대를 내려다보던 그가 참모에게 한마디 했다. "렛츠 겟 아웃." 용산기지에서 미군이 떠나자는 뜻이었다. 그는 나중에 "만약 뉴욕 센트럴파크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면 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도 했다.
▶용산 미군 기지 이전은 사실 부시 미 정부가 더 원한 것이었다. 9·11 테러로 안보 환경이 급변하자 미국은 해외 미군 재배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휴전선에서 인계철선(引繼鐵線) 역할을 하던 2사단과 용산기지를 통합해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이때 대선에서 반미(反美) 정서를 활용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미군 기지 이전 문제를 꺼내 든 것이다. 미국은 못 이기는 척 이전에 동의했다. 9조원에 달하는 이전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는 조건은 미국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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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을 계기로 미군이 자리 잡기 전 용산에는 일제의 군 사령부가 있었다. 1904년 무렵 러·일 전쟁 이후부터였다. 1930년대 일제가 펴낸 관광지도를 보면 현재의 용산고 근처에 보병 78·79연대와 포병대, 경리단길에 사격장이 있었다. 지금의 동부이촌동에는 기병대, 서빙고동에는 공병대가 있었다.
▶용산에 주둔한 미 8군은 1944년 창설돼 2차대전 때 일본과 싸운 부대였다. 미 8군 관계자의 초청으로 기지 내 드래곤 호텔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것은 소수의 계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자동차에 부착된 용산기지 출입증은 한때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패티킴 신중현 윤복희 등 대중음악 스타들이 용산기지의 무대에서 이름을 알렸다. 철없는 미군 병사들의 일탈 행위가 사회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이런 미 8군이 어제 64년간의 용산 시대를 마감하고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 새 청사에 입주했다.
▶얼마 전 둘러본 캠프 험프리스는 미국의 웬만한 소도시보다 훨씬 커 보였다. 미군과 미군 가족 4만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주한 미군 사령관과 미 8군 사령관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활주로를 내려다보며 근무할 수 있게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주한 미군은 그동안 북한의 위협을 잠재우며 대한민국 발전의 울타리 역할을 했다. 한·미 동맹은 이제 상호 호혜적인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올해 중 방한한다. 그가 캠프 험프리스에서 한·미 동맹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느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