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민망한 벌거숭이들…이런 일은 없었으면." 1969년 6월 서울 제2한강교(양화대교) 부근 강물에서 대낮에 나체로 물놀이하는 세 남자의 뒷모습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신문은 "김포공항과 도심지를 잇는 다리에 외국 손님들도 빈번히 지나다니다가 이들을 보고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민망한 모습"도 보인다고 질타했다(경향신문 1969년 6월 20일자).
오늘엔 상상하기도 어려운 나체 물놀이족에 대한 고발 기사가 1970년대 말까지도 가끔 보인다. 이런 몰상식은 사람 많은 해수욕장보다는 한적한 산간 계곡물이나 강변이 주 무대였다. 1957년 8월엔 서울시경국장이 '보기도 쑥스럽게 한강에서 나체로 수영하는 자'에 대한 처벌 방침을 발표했다. 시경국장은 "수도 시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공연음란죄로 입건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래도 누드 수영족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루아침에 근절되기엔 나체 물놀이의 뿌리는 꽤 깊었다. 한여름 밤이면 동네 개울에서 다 벗고 목욕하던 까마득한 시절부터의 풍습은 근대가 시작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1929년 7월에는 벌건 대낮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동(河童)이 되어 훌렁 벗고 대동강물에 뛰어들어 놀았다. 부근에서 빨래하던 부녀자들이 '곤란'을 겪게 되자 평양경찰서가 단속에 나서 30여명을 붙잡았다.
가깝게는 1970년대 후반까지도 나체 물놀이가 지탄받았다. 휴일이던 1977년 7월 26일 오후엔 서울 우이동과 정릉 계곡에서 중년 남녀가 완전 나체로 목욕하는 모습이 신문 취재진에게 포착됐다. 언론은 피서철 다섯 가지 탈선 퇴폐 행락 사례로 '10대 혼숙 캠핑' '바가지 상행위' '지나친 노출' '사치성 향락'과 함께 '나체 물놀이'를 꼽고는 "도시 새마을운동을 벌여서라도 정화하자"고 외쳤다.
그 시절엔 수영복 아닌 속옷 팬티 바람으로 물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올 누드보다는 좀 나을지 몰라도 추태이긴 마찬가지였다. 1967년 여름 피서지의 꼴불견을 고발한 언론은 "러닝셔츠와 팬티를 수영복 대용으로 입고 물에 들어가는 중년 부인. 나체보다 나을 것이 무어냐고 묻고 싶어지는 광경"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해 수영복 안내 기사에는 "바닷가에서는 수영복을 입는 게 에티켓"이란 표현이 등장했다(매일경제 1967년 6월 28일자). 마치 "기차 여행 땐 기차표를 구입하고 승차하는 게 에티켓"이라는 말처럼 웃음을 짓게 한다.
1960년대 들어 해수욕장이 전국 곳곳에 개장되면서 수영복 보급이 늘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은 가정은 어린 자녀를 해수욕장에서도 그냥 속옷 바람으로 놀게 하기도 했다. 어느 초등학교 여학생은 "4학년 때 처음 입은 수영복을 자랑하려고 해수욕장에서 발이 아프도록 돌아다녔다"고 신문에 글을 썼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수영복을 못 입었던 이야기는 오늘의 젊은 세대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전설처럼 되어 버렸다. 속옷도 입는 둥 마는 둥 물에 뛰어들며 시작된 물놀이의 역사는 몸을 예쁘게 가려온 역사가 되었다. 전통적 수영복은 속옷 모양을 닮았지만 근래에 물놀이 옷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래시 가드(rash guard)는 겉옷을 닮아 몸을 훨씬 더 가려준다. 고리타분했던 시절엔 물놀이하며 훌렁훌렁 벗기도 했는데, 그 몇 배로 개방된 오늘엔 바다와 강물에서 몸을 더 가리게 됐으니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