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배색 줄무늬' 도용한 포에버21에 상표권 소송… 포에버21 '줄무늬는 소유할 수 없어'
2018 크루즈 컬렉션에선 반대로 독립 디자이너 디자인 도용해 구설수
'내가 하면 패러디, 남이 하면 표절' 윤리적 책임 공방 이어져

포에버21의 스웨터(왼쪽)과 구찌 색상 배색 줄무늬(오른쪽)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가 디자인 도용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로부터 배색 줄무늬를 도용당했다는 이유로 법정 공방을 펼치고 있는 구찌는, 지난 5월 2018년 크루즈 컬렉션에서 선보인 몇몇 제품이 독립 디자이너의 것과 유사하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디자인 도용이라는 예민한 사안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것이다.

구찌는 2015년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구찌의 디렉터로 임명한 이후 고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 케어링 그룹은 구찌의 1분기 매출액이 작년보다 48.3% 증가해 20년 만에 가장 높은 매출 증가세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런 만큼 이번 디자인 도용 사건이 구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 배색 줄무늬는 구찌의 것? 구찌, 포에버21 상표권 소송… 포에버21 맞소송

구찌는 자사의 컬러 줄무늬를 베꼈다는 이유로 미국 패스트 패션 브랜드 포에버21에 상표권 소송을 제기했다. 구찌는 작년 12월 포에버21 측에 1차 특허권 침해 경고장을 보내, 파란색과 빨간색 줄무늬를 사용한 모든 의류와 액세서리의 판매 중단을 요청했다. 올해 1월과 2월에는 녹색과 빨간색 줄무늬까지 특허 침해 범위를 확대해 경고장을 보냈다.

구찌의 파랑-빨강 줄무늬 의상(왼쪽)과 이를 도용한 의혹을 받고 있는 포에버21의 줄무늬 제품(중간, 오른쪽)

구찌는 자사를 상징하는 배색 줄무늬를 포에버21이 도용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구찌가 말하는 배색 줄무늬는 초록-빨강-초록과 파랑-빨강-파랑의 색상이 배색 된 줄무늬로, 오랜 기간 구찌를 상징하는 모티브로 활용됐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구찌가 상승세를 띠면서 이 배색 줄무늬는 유행의 아이콘이 됐다. 미국 패스트 패션을 대표하는 포에버21 역시 구찌 풍의 줄무늬가 들어간 보머 재킷과 스웨터, 초커 등을 내놓았다. 구찌는 “포에버21의 줄무늬가 우리의 시그니처 줄무늬와 혼동을 일으킬 정도로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포에버21은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며 반격에 나섰다. 포에버21은 “배색 줄무늬는 의류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장식이므로, 구찌가 독점권을 주장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다는 입장을 냈다. 이어 “구찌의 상표 등록은 취소되어야 하고, 소송 역시 중단되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 포에버21에 카피 소송 건 구찌, 독립 디자이너 창작물 도용해 구설수

디자인 도용의 피해자임을 주장한 구찌는 지난 5월 열린 2018 크루즈 컬렉션 이후 처지가 바뀌었다. 미국 뉴욕 할렘 디자이너 대퍼 댄(Daper Dan)의 디자인을 비롯해 독립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을 도용한 혐의로 역 표절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대퍼 댄의 1980년대 밍크 재킷(왼쪽)과 구찌의 2018 크루즈 컬렉션 제품

구찌는 이 컬렉션에서 로고 원단으로 만든 부풀린 소매를 적용한 밍크 재킷을 선보였는데, 이 제품은 대퍼 댄이 1980년대 올림픽 메달리스트 다이안 딕슨(Diane Dixon)을 위해 제작한 옷과 유사했다. 당시 대퍼 댄은 브랜드 명품 로고가 들어간 짝퉁 원단으로 옷을 만들어 명성을 얻은 ‘카피의 아이콘’이었다. 그런 그의 디자인을 모방한 제품을 구찌가 들고 나왔으니, 여론은 술렁였다. 이에 대해 구찌의 크리에티브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오마주(hommage∙존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뉴질랜드와 호주 출신의 그래픽 아티스트들이 구찌의 티셔츠와 토트백에 자신들의 디자인이 도용됐다고 주장해 또 논란이 됐다. 뉴질랜드 출신의 아티스트 스튜어트 스미드(Stuart Smythe)는 2014년 자신의 브랜드인 CLVL에서 만든 뱀 로고를 구찌가 도용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보면 스미드의 뱀 도안은 구찌의 티셔츠 도안과 매우 유사하다.

또 다른 피해자로 나선 일러스트레이터 밀란 차고리(Milan Chagoury)는 자신의 디자인이 구찌의 토트백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즈니스를 위해 전문 디자이너를 고용하라. 이 사람들은 죄책감 없이 다른 사람의 작품을 베끼고 있다”며 구찌에 일침을 가했다.

◆ ‘내가 하면 패러디, 남이 하면 카피’… 윤리적 책임 공방 이어져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과거와 현재, 럭셔리와 하위문화를 절묘하게 조합해 밀레니얼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며 구찌의 신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조합 방식이 도를 지나친 듯 하다.

스튜어트 스미드의 뱀 로고(왼쪽)와 구찌 티셔츠 그래픽(오른쪽)

댄버 댄의 작품을 오마주했다는 해명은 그렇다 치더라도, 젊은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하필 포에버21과의 디자인 카피 논쟁과 시기가 겹치는 바람에 “내가 하면 패러디, 남이 하면 카피”라는 대중의 비아냥도 감수해야 했다.

패션업계의 디자인 도용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행을 따르는 패션 상품의 특성상 독창성을 입증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기존의 디자인을 재해석하는 패러디가 하나의 창작 방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 경계가 더 모호해지고 있다.

패스트 패션이 명품에서 영감 받고, 명품이 길거리 문화에서 영감을 얻는 상호 보완적 방식은 패션계를 움직이는 원천이 되고 있다. 그런 만큼 구찌의 공방들이 어떤 결과를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