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중앙지검에 “맥도날드가 패티(햄버거에 들어가는 고기)를 덜 익혀 주는 바람에 우리 아이가 병에 걸렸다”는 내용의 고소장이 접수됐다. 네 살 아이가 지난해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나서 대장균 감염증의 일종인 ‘용혈성 요독 증후군(HUS)’에 걸렸다는 것이다.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신장(콩팥) 기능의 90%가 손상돼 매일 10시간씩 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에서 햄버거를 먹고 HUS에 걸렸다 고소한 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례가 없던 만큼, 인터넷 곳곳에서 "햄버거 패티에 내장이 섞여 대장균성 질환인 HUS가 발병한 거다", "HUS는 잠복기가 2일인데 아이가 햄버거를 먹은 지 2시간 만에 증상을 보였다 하니 인과관계가 이상하다" 등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추측들이 실제 의학적으로도 근거가 있을까. 이하정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에게 물었다.
―쇠고기는 피가 보이는 상태의 레어 스테이크로도 먹고, 심지어 육회로도 먹습니다. 그런데 패티가 덜 익어서 병에 걸리는 건 왜인지 궁금합니다.
우선, 아직 감염 경로를 덜 익은 햄버거 패티로 확정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익지 않은 패티 때문에 HUS가 발병할 우려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정확히 답하려면, HUS 감염 경로부터 설명이 필요합니다.
HUS는 대장균의 일종인 O-157이 일으키는 병입니다. 병원성 대장균이니, 기본적으로 동물 내장에 있는 균이죠. 인간 장에 대장균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하지만 꼭 내장을 먹는 방법으로만 접촉하게 되는 건 아닙니다. 가령 내장 손질한 칼을 제대로 닦지 않고 곧장 살코기를 손질했다면, 살코기를 먹다가도 HUS에 걸릴 수 있습니다. 동물 분변이 묻은 채소를 제대로 씻지 않았다면 채소 섭취만으로도 HUS가 발병할 수 있습니다. 동물 내장이나 분변이 닿은 물을 정수하지 않으면, 물 때문에 HUS 증세를 보이는 것도 가능합니다.
패티도 마찬가지죠. 만일 내장을 저미던 칼을 제대로 소독하지 않고 그대로 살코기 다질 때 썼다면, O-157이 패티에도 옮겨갈 수 있습니다. 햄버거 패티에 내장이 섞이지 않아도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O-157은 충분히 가열하면 사라지는 균입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제대로 익히지 않을 경우 균이 쭉 살아남아 독소를 내뿜을 수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레어 스테이크나 육회도 이런 일이 잘 없는데 왜 패티만 가열 논란이 나오느냐면요. 우선 육회는 내장 요리와 같이 파는 음식점이 드물어서 문제 생길 여지가 적은 편입니다. 어쨌건 O-157은 동물 내장이 없는 곳에선 찾기 어려운 병원균이니까요.
레어 스테이크와 패티를 비교하면, 보통 고기와 다짐육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짐육은 칼로 고기를 저미다 보니 칼날이 고기에 많이 닿기 마련이고, 칼날에 O-157이 남아있다고 가정한다면 일반 고기보다 병원균이 옮아붙을 기회가 많아지죠. 더군다나 스테이크는 레어라 해도 표면을 그슬리기 때문에 칼이 닿은 부위만큼은 저절로 소독이 되지만, 패티는 칼날 닿은 부분도 깊숙이 숨을 수 있으니 잘 굽지 않으면 균이 살아남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지지요. 이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 패티가 의심을 받는 듯합니다.
―어느 정도 온도로 열을 가하면 O-157이 사라지나요?
보통 저희 의사들은 환자들께 "팔팔 끓는 물에 익혀 드시면 안전하다"고 권합니다. 즉, 물이 끓는 온도인 100℃ 정도라면 O-157을 넉넉히 없앨 수 있다는 거죠.
―이번에 HUS에 걸린 아이는 햄버거를 먹은 지 2시간 만에 증세를 보였다 합니다. HUS 잠복기는 2일이라는데, 2시간 만에 발병이 가능한가요?
잠복기란 '정확히 이 시간이 지나면 걸린다'는 개념은 아닙니다. 감염 후 증상을 보이기까지 소요되는 '평균시간'입니다. 다시 말해, HUS 잠복기가 이틀이라는 건 HUS 유발균에 감염된 사람이 증상을 보일 때까지 평균적으로 48시간 정도가 걸린다는 거죠.
그러니 HUS 증상을 보이기 48시간 전에 먹은 음식이 병의 원인이다, 라고 딱 잘라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환자 나이나 건강 상태 등 다양한 변수 때문에 잠복기가 달라질 수 있거든요. 물론 잠복기가 평균 48시간인 병이 2시간 만에 증세를 보이는 건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잠복기를 근거로 햄버거 패티를 발병 원인에서 배제할 수는 없다는 거죠.
―아이가 병에 걸린 날, 같은 매장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은 사람이 다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이 발병하는 것도 가능한지요?
그 때문에 햄버거 패티를 덜 익힌 게 발병 원인으로 지목되는 듯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충분히 열을 가하면 O-157은 사라집니다. 햄버거 패티가 O-157 감염경로라는 전제 하에서, 모든 패티가 잘 구워졌지만 딱 하나 제대로 익지 않은 패티가 있었다면, 그 패티를 먹은 사람만이 병에 걸리는 건 가능하죠.
다만 이를 입증하는 건 쉽지 않을 듯합니다. 보도를 보니 아이가 HUS 증세를 보인 때는 지난해 9월이라더군요. 여태껏 패티가 남아있을 리도 없고, 패티 사진을 찍어두지도 않았을 테니 정말 '덜 익은 패티'가 원인이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HUS는 육류 아닌 경로로도 감염이 가능한 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