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정리할 땐 언제나 수납이 문제다. 하지만 부엌과 냉장고를 관찰해온 두 작가 김미수('생태부엌'의 저자), 류지현('사람의 부엌'의 저자)씨 생각은 조금 다르다. 식재료 자체에 주목하고, 생태 환경과 냉장고 없이 살던 시대 인류의 삶에서 힌트를 얻으라는 것. "꼭 냉장고에 넣지 않아도 되거나 혹은 냉장고에 넣으면 오히려 상하는 식재료들은 냉장고 밖 눈에 보이는 곳에 보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다. 두 작가가 전하는 팁이 꽤 쏠쏠하다.
토마토는 냉장고에 보관하면 안 되는 대표적인 채소다. 10도 이하면 냉방병에 걸린다. 냉장고의 온도가 1~4도이므로 토마토는 냉장 보관하면 맛이 크게 떨어지고 영양소도 파괴된다. 볕이 직접적으로 들지 않는, 통풍 잘되는 창문 근처가 토마토를 위한 자리다. 홍시처럼 쟁반에 토마토 꼭지를 아래로 해서 서로 닿지 않게 보관하면 자체 수분 증발을 늦춰 좀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레몬도 10도 이하에 보관하면 반점이 생기고 심해지면 물러 버리기도 한다. 바구니에 담아 식탁 위에 1~2주 정도 둬도 끄떡없다. 한 달 이상 보관해야 한다면 종이로 싸서 보관한다. 초록색 호박, 보랏빛 가지, 빨갛고 노란 파프리카 등도 식탁 위 바구니에 보관할 수 있는 채소다. 마르지 않게 이따금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거나 물이 담긴 그릇 위에 망을 포개 놓고 올려놓아도 된다. 빛이 안 들고 통풍이 잘되는 주머니에 감자와 사과를 함께 보관하는 것은 많이 알려진 보관법. 마땅한 공간이 없다면 싱크대 서랍 한 칸을 비워 감자와 사과를 함께 보관한다.
모래를 담은 바구니는 감자를 숨겨 두거나 생강 또는 잎을 잘라낸 래디시, 당근 같은 뿌리채소 보관용으로 유용하다. 이때 뿌리채소는 모래에 심어 세워서 보관하는 게 좋다.
김미수씨는 "병조림을 즐겨 사용하는 것도 냉장고를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반찬이나 밥, 국 등을 조리한 뒤 재빨리 병에 담아 밀봉해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단다. 한여름엔 욕조나 커다란 대야에 찬물을 받아두고 밀폐 용기에 식재료를 넣어 보관하는 방법도 있다. 마치 계곡에 놀러 갔을 때 수박을 담가놓는 것과 같은 원리다. 장기간 보관하려면 병에 담고 뜨거운 상태에서 뚜껑 닫은 유리병을 통째로 솥에 넣고 한 번 더 중탕한다. 이 밖에 김씨는 주방 근처에 소량의 식용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화분텃밭'을 가꾸며 자급자족 식탁을 만들어 보길 권한다. 부추, 실파, 허브류 등 손이 많이 가지 않아 기르기 쉬운 채소들을 길러 그때그때 잘라 먹으면 가장 신선한 상태에서 먹을 수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