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얼음 공장마다 식용 얼음은 색소로 물을 들여 만들도록 할 것." 1957년 1월 12일 보사부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별난 지시를 내렸다. 불법 유통되는 불결한 '한강 얼음'을 식용으로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안전한 공장 얼음에 표시를 하려는 것이었다(조선일보 1957년 1월 14일자).

한겨울 꽁꽁 언 한강에서 잘라낸 얼음을 저장해 놓았다가 여름에 꺼내 쓰는 일은 조선시대부터 있어 온 것이기는 했다. 한 세기 전엔 냉면에도 한강 얼음을 풍덩 넣어 먹을 정도로 강물이 깨끗했다. 1920년대 중반 공장 얼음이 본격 판매되기 시작한 뒤에도 여름철 경성(京城) 시민들 얼음 수요의 절반쯤을 한강 얼음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광복 후 강물이 오염되자 정부는 1948년부터 한강 얼음을 먹지 말라고 경고했다. 1955년부터는 얼음 채취 자체를 금지했다.

“한강 얼음은 위험하니 먹지 말고 노란색으로 착색된 공장 얼음을 먹어야 한다”는 당국의 경고를 보도한 기사(경향신문 1957년 5월 11일자)와 1950년대 해빙기에 한강에서 소달구지를 동원해 얼음을 채취하는 모습.

하지만 돈을 노린 업자들은 한강 얼음 채취와 판매를 그치지 않았다. 그 무렵 공장 얼음 135㎏짜리 한 덩어리 값이 오늘의 물가로 10만원이 넘었다. 한강 얼음을 그 반값만 받아도 짭짤한 장사였다. 매년 2월 해빙기면 밤마다 한강 얼음판 위에선 톱질 소리가 요란했다. 땅굴에 얼음을 넣고 짚과 왕겨, 톱밥 등을 덮어 두면 조금씩 녹기는 해도 한여름까지 절반 정도를 보존할 수 있었다. 대동강 물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었다. 한강 얼음 장사는 제조 원가가 '제로'다. 얼음 썰어 나르는 인건비와 저장 비용만 있으면 됐다. 그 인건비조차도 절감하는 묘수가 있었다. 교도소 재소자들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한강과 가까운 마포형무소 등의 수감자들이 종종 동원됐다. 어느 업자에 따르면 재소자 동원은 형무소에나 업자에게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고 한다. 업자는 싼 임금으로 일을 시켜서 좋고, 형무소 측도 겨울에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수감자들을 동원해 부수입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 업자는 "재소자들도 얼음 채취 작업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말했다. 콩밥만 먹던 그들이 작업하며 흰 쌀밥을 배부르게 먹고 담배와 막걸리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경향신문 1977년 8월 6일자).

세균 투성이 한강 얼음은 1960년대 초까지 일부 식당의 냉면이나 길거리 냉차에 들어갔다. '국민 위생에 암적 존재'란 지탄까지 나왔다. 당국의 단속도 별 효력이 없자 "아예 깨끗한 공장 얼음에 물을 들여 구별하자"는 방안까지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 '컬러 얼음' 아이디어는 호응을 얻지 못해 흐지부지됐다. 하필이면 얼음에 물들일 색을 노란색으로 결정한 게 문제였다. 냉커피나 냉면 육수 등과 어울리게 하려고 정한 색으로 보이지만, 오줌 빛을 닮은 누리끼리한 얼음이 어떤 반응을 얻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오늘날엔 자기 집 냉장고에서 얼음을 얼려 먹을 수 있다. 그런데도 공장 얼음 판매량은 무섭게 늘고 있다. 2013년 400억원 규모였던 편의점 얼음 매출이 해마다 급증하더니 폭염이 일찌감치 기승을 부리는 올해는 약 1200억원 규모에까지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얼음 시장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한다. 제빙업계는 즐거울지 몰라도 환경 파괴의 결과라는 생각을 하면 얼음의 뒷맛이 약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