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비선실세'최순실씨의 딸 정유라(21)씨 입시·학사특혜 관련 선고가 열렸던 서울중앙지법 519호 법정에서는 전·현지 이화여대 관계자 7명이 고개를 숙이고 줄지어 서 있었다. 이 법원 형사 29부(재판장 김수정)는 정씨 부정입학과 학사특혜에 관여한 최경희 전 이대 총장과 김경숙 전 이대 신산업융합대학장에게 각각 징역2년을, 남궁곤 전 이대 입학처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류철균 전 교수는 및 이인성 교수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번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만 해도 총장을 포함해 네 명이다. 이날 선고결과가 확정되면 벌금형이 아닌 한 모두 교수직을 잃게 된다.
국내 최고의 여성 사학(私學)의 교수들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특검 관계자는 "학교 수뇌부가 조직적· 총체적으로 관여한 사상 유례없는 입시, 학사비리"라고 했다. 총 192쪽에 달하는 판결문에는 그 정황이 낱낱이 드러나 있었다.

'정윤회 딸' 을 위한, 조직적·계획적 범죄
최순실씨가 딸 정씨의 이화여대 입학을 생각한 계기는 김종 당시 문체부 2차관에서 비롯됐다.
김 차관은 최씨 추천으로 그 자리에 올라 있었다. 지난달 10일 그의 법정 증언에 따르면 그는 2014년 9월 최씨로부터 '딸의 대학지원과 관련해 알아봐 줄 곳이 있느냐'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자신의 모교인 한양대를 추천했다. 하지만 최씨가 '(체대가)지방에 있어 가지 않는다'고 하자 자신이 잘 알고 지내는 김경숙 학장이 있는 이화여대를 추천했다고 했다. 그가 '김경숙 학장과 잘 안다'고 하자 최씨는 "학장에게 부탁해 달라"고 했다. 그해 9월 김 차관은 김 학장을 만나 "정윤회씨 딸이 지원했으니 합격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자 김 학장은 "잘 챙겨보겠다"고 했다. 정씨가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딴 후에는 ".금메달 딴 것이 어필될 수 있도록 얘기해 달라"는 청탁도 오갔다.
김 학장은 최순실씨와 이화여대를 연결하는 핵심고리였다. 그의 이런 역할은 학교 최고책임자와 동등한 구형량(5년) 선고형량(2년)에 나타나 있다. 그는 학사업무를 총괄하는 남궁곤 당시 입학처장한테 "정윤회씨 딸이 들어온다니 합격시켜 달라"며 최씨의 '민원'을 전달한다. 그러자 남 처장은 학교 최고책임자인 최경희 총장에게도 이 사실을 보고한다. 최 총장은 처음에는 상황을 몰랐다고 한다. 그러자 남 처장이 정윤회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설명했고(당시에는 최순실씨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최 총장은 "정유라 뽑아라"라고 하며 "나는 오늘 보고받은 바 없다"고 했다.
2014년 10월 체육특기전형 면접장에서 남궁 처장은 정씨에게 금메달 지참을 혀용했다. 면접위원들에게 '총장님이 금메달 갖고 온 사람 뽑으라고 했다. 비선실세 딸이다."라고 했고 면접장 가는 위원들을 따라오면서 손나팔을 만들어 "금메달입니다, 금메달"이라고 신호를 보냈다. 서류전형에서 9등이었던 정씨는 면접에서 최고 점수를 받고 6등으로 올라섰고, 6명을 뽑는 특기자 전형에 최종 합격했다.
'비선실세의 딸'을 위한 입시작전은 조직적이고 치밀했다. 당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정씨에게 유리하도록 '신기준'입시요강이 제출됐고, 그에 따르면 정씨는 서류만으로도 6명을 뽑는 체대 입시에서 6등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기준'이 2015년 입시전형 마감 이후에 제출돼 입학처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정성 시비가 일자 결국 면접에서 최고점수를 주는 쪽으로 우회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수뇌부는 반성은 커녕 모두 범행을 부인했다. 최 총장은 "범죄를 감수하면서까지 정유라에 대한 특혜를 부여할 동기가 없다"며 자신은 관여한 바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근거로 판결문의 상당 부분을 이런 주장을 반박하는데 할애했다.
이화여대는 정씨 입학 이후 각종 국책사업 선정에서 '몰아주기'특혜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특혜가 정씨 입학의 대가인지, 학교 수뇌부가 이런 행정적 이득을 노리고 정씨를 부정입학시킨 것인지는 판결문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특검 관계자는 "많이 조사했지만 (정씨 입학과 학교가 본 이득간의) 직접적 인과관계는 드러나지 않았다"며 "아마도 비선실세 딸의 입학으로 학교가 볼 이익, 그리고 학교 관계자들이 개인적으로 볼 이익 등이 함께 고려됐을 것"이라고 했다.

인사·보직 불이익 우려에…'손발'이 된 교수들
남궁 처장은 당시 교수로 이뤄진 면접위원들에게 "정윤회의 딸 정유라가 지원한다"며 면접에 반영해 달라고 했다. 처음에 이를 들은 면접위원 중 하나는 놀라서 그를 제지하면서 "이건 농담으로 들으시고 반영하지 마시라"고 다른 위원들에게 말했다. 그런데도 남궁 처장은 면접위원들을 따라오면서 손나팔로 '금메달입니다, 금메달'하고 소리쳤다고 한다.
'깜짝 놀랐다'던 위원들은 결국 처장 지시대로 정씨에게 면접 최고점수를 줬다. 판결문에서는 "총장이나 입학처장 요구에 따르지 않을 경우 교수들이 인사 및 보직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서"라고 그 이유를 적시하고 있다.
부정입학 후에는 치밀한 '학사관리'가 이어졌다. 정씨가 학교에 나오지 않아 2015년 1학기 학사경고를 받고 휴학하고 이듬해 복학하자 이번에는 어머니 최순실씨가 직접 최경희 총장에게 "출석하지 않아도 학점을 받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최 총장의 측근 이인성 교수는 총장의 부탁을 받고 자신이 박사과정을 지도하는 겸임교수 유모씨에게 "체육특기생이 들어갈 것"이라며 "다른 학생들이 알면 시끄러워지니 출석을 부르지 말라"고 지시한다. 그는 학기말에는 출석도 하지 않은 정씨에게 B+학점을 줄 것을 요구했다. 유씨가 "다른학생들이 피해를 본다"고 난색을 표하자 "그럼 C+를 주라"고 했다. 과제물도 내지 않았던 정씨에게는 80.6의 점수가 입력됐다. 결석시간도 0.0으로 처리됐다.
체육과학부 학과장 이원준 교수도 최 총장의 부탁을 받고 담당 교수 강모, 서모씨에게 정씨의 학점관리를 지시했다. 그는 "당시 체육학과에서 유일한 부(副)교수로서 2016년 말 정교수 심사를 앞두고 있었어 총장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마침 그해 6월 교수 정년보장 심사에서 학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침도 결정됐다.
이미 정교수의 지위를 갖고, 소설가로도 필명을 날렸던 류철균(필명 이인화)교수가 학점특혜에 가담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학교가 왕따당한 정유라를 책임져야 한다"는 김경숙 학장의 지시 때문이라고 했다. 김 학장이 '정유라가 비선실세의 딸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한다'며 '머리카락이 빠져 가발을 써야 하는 상황이고 얼굴이 붓는다'고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학장은 "그야말로 소설을 쓰고 있다"며 반발했지만 재판부는 류 교수 말이 믿을만 하다고 봤다. 정씨는 어머니 최씨와 함께 직접 류 교수를 찾아와 '독일에서 인터넷이 안 되니 (온라인 강의를 듣지 않아도)학점을 달라'는 부탁을 했는데, 당시 정씨가 붉은 잇몸을 드러내고 웃었다고 한다. 그래서 류 교수는 '(왕따를 당해)아프다는 말이 사실인가보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수뇌부의 지시를 받고 나름의 이해관계에 따라 학점 특혜에 관여했던 '중간단계'교수들은 집행유예(류철균, 이인성, 이원준)라도 모두 처벌대상이 됐다. 반면 정씨에게 최고점수를 준 입시 면접위원들을 비롯해 이들 교수들의 지시를 받아 정씨 학점취득을 도와 준 조교들은 기소대상에서도 제외됐다. 특검 관계자는 "이들은 '위력'의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처벌받은 교수들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기소됐다. '윗사람'인 이들이 승진이나 보직 등에서 갖는 권한을 무기로 아랫 사람들을 압박해 입시·학사특혜를 주게 했다는 구조여서, '위력'을 받은 아랫사람들을 처벌할 수 없었다는 취지다. 대학사회 서열관계의 '을'(乙)에 대한 법적인 배려다.
특검 관계자는 "그동안 입시·학사비리에 교수 한두 명이 관여한 경우는 있었어도 이번 사건처럼 총장에 입학처장, 학장까지 학교 전체가 조직적으로 동원된 경우는 처음"이라며 "비선실세의 딸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했다. 3일 현재 대부분의 피고인들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해 법정다툼은 계속될 기세다. 하지만 1심 판결문 200여쪽에 낱낱이 드러난, '비선실세'에 굴복한 우리 교육의 참상(慘狀)이 바뀔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양은경 법조전문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