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시간에 '양팔 간격으로 벌려'를 못 했습니다. 그러면 운동장 맨 가 학생들이 교문 바깥으로 밀려나니까요. 운동회 때는 운동장이 장터보다 혼잡해 부모를 잃어버리기 일쑤였지요."

1967년 충북 보은군 삼산초등학교를 졸업한 김학부(63)씨는 "당시 삼산초는 한 반 70여 명씩 전교생이 2500명이 넘어 보은군에서 가장 컸다"고 회상했다.

'양팔간격'땐 교문밖으로 밀려났던 삼산초등학교… 지금은 사람 모자라 축구도 제대로 못해요.

그러나 이 학교 풍경은 50년 만에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지난달 18일 삼산초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하던 1학년 2반 학생들은 전원이 14명에 불과했다. 대여섯명이 운동장 한쪽 골대에서만 공 차며 놀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는 담임교사까지 가세해서야 겨우 3명을 채웠다. 한때 3000명에 가깝던 전교생이 180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대한민국의 '인구 동력(動力)'이 꺼져가고 있다. 1980년 1440만명이던 학령인구(6~21세)는 올해 846만명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2040년 640만명, 2060년엔 480만명으로 급락한다는 게 통계청 전망이다. 전체 인구 중 학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1970년 39.1%에서 올해 16.4%로 감소했다. '미니 학교'도 속출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신입생이 '0명'인 초등학교는 113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는 7개교였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인적 자원으로 성장해온 대한민국이 학생 감소로 '무(無)자원 국가'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중·고교도 2001년부터 시작된 초저출산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전북 익산시 함열고 송갑석 교장은 지난 3월 신입생 입학식 때 운동장에 학년별로 선 학생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3학년 91명, 2학년 96명인데 신입생은 31명에 불과했다. 송 교장은 "익산시내 26개 중학교 3학년생이 올해 500명이 줄었는데, 내년엔 올해보다 300명이나 또 준다니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기사 더보기

[출산율 2명서 1.4명… 일본은 56년, 우리는 17년새 급락]

[2035년 한국… 소득 60% 세금 떼 75세 이상 700만명 부양한다]

지난 2일 서울 필동의 제일병원 분만실. 이날 아침 9시부터 12시간 동안 이 병원에선 자연분만 3건, 고령 임신·조기 진통에 따른 제왕절개가 6건 이뤄졌다. 산모 9명 중 20대는 딱 한 명. 나머지는 모두 30대였다. 38세 초산도 있었다.

김문영 산부인과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한 달 800건 넘던 분만 건수가 요즘엔 350건 정도로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올해 신생아 30만명대 시대가 분만 현장에서 먼저 감지되고 있다. 신생아가 35만~36만명 수준으로 줄어 작년(40만6300명)보다 약 4만명 감소할 경우 신입생이 200명인 초등학교 200곳이 단번에 사라지게 된다.

7일 서울 시내의 한 병원 신생아실. 초록색 카트가 소독을 마친 상태로 커버를 씌워 놓은 빈 카트다. 이 신생아실에는 49개의 신생아 카트가 있는데 이날 현재 신생아 수는 16명이었다. 카트의 3분의 1에만 아기들이 있는 것이다.

올해 신생아의 급감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3대 요인을 꼽는다. 우선 가임 여성(20~39세)이 2006년 799만명에서 작년 685만명으로 10년 새 113만명이나 줄었다. 혼인 건수도 매년 떨어져 최근 5년 새 4만8000건 줄었다. 가임 여성과 혼인 건수 감소가 신생아 축소로 이어진 것이다. 혼인 연령도 매년 늦어져 고령 임신이 늘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여성 평균 혼인 연령이 30세를 넘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결혼 기반을 마련하지 못해 2030세대 결혼 기피 현상이 심해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미혼 대국'이라는 일본을 추월할 정도가 됐다.

이상림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980~1990년대는 산아 제한으로 아기가 줄었어도 가계소득이 늘어나 인구 보너스(bonus) 시기였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아기가 더 적어진 반면 고령화로 부양할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인구 오너스(onus·부담) 시대로 급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병원에서 산모들이 많이 몰린 곳은 분만실이 아닌 그 옆 고위험 임신 집중 관리실이었다. '임신 18주 자궁 경부 무력증' '임신 26주 임신중독증' '임신 28주 쌍둥이' 등 입원 상황판에는 7명 고위험 임신부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 태아 상태 모니터링 장치를 달고 임신부가 절대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든 이곳 병상은 6개밖에 안 돼 한 명은 집중 관리실 밖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병원 측은 "임신 합병증 발생 위험이 큰 35세 이상 고령 산모가 2006년 전체 산모의 19.3%에서 지난해엔 46.4%나 됐다"고 말했다. 저출산과 고령 출산이 맞물린 위기 상황이 국내 대표적인 산부인과 병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젊은 출산'을 유도하는 정책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사 더보기

[올 신생아 두자릿수 급감… 準재난 상황]

[고령 산모는 늘고, 고위험 분만 맡을 의사는 줄고]

8일 대전 서구 월평동 교복 제작 업체 흥진섬유 공장. 640여㎡(약 200평) 작업장에서 직원 40여명이 학생용 와이셔츠 재봉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하루 목표량을 기록한 전광판에 '650'이란 숫자가 보였다. 이종찬(53) 부사장은 "20년 전 처음 교복 사업을 시작할 땐 하루 1400~1500장을 납품했는데 지금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말했다.

저출산 여파로 중·고교 신입생이 매년 줄면서 납품 물량도 덩달아 쪼그라든 것. 1996년엔 학생용 와이셔츠 40만장을 생산했지만 올해는 12만장도 어려울 전망이다. 한때 100여명이던 직원도 40여명으로 줄었다.

1979년 3월 대구 시민회관에서 열린 ‘매일분유 1일 어머니 교실’에 여성 2400여 명이 참석해 임신과 출산, 육아 강의를 듣고 있다(사진 위). 2015년 12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매일유업 맘 스쿨’ 40주년 기념식에는 예비 엄마·아빠 250쌍이 참석했다(사진 아래). 1970년 4.53명이던 합계 출산율은 지난해 1.17명까지 떨어졌다.

저출산 풍조가 심화되면서 산업 현장은 변화를 맞고 있다. 신생아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분유·아동복 시장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저출산이 10년 안팎 시차를 두고 초·중·고교생 감소로 이어지면서 교복과 테마파크 등이 타격을 받고 있다.

신생아 규모는 1990년대 중반 70만명을 넘었지만 최근엔 40만명대까지 떨어졌다. 그 결과 국내 분유 소비량이 급감하면서 분유업체들은 활로를 찾아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아동복 업체 상당수는 사업을 접거나 매각됐다. 국내 최대 유아복 업체 아가방앤컴퍼니는 2014년 중국 랑시그룹에 팔렸고, 해피랜드는 골프 의류와 숙녀복 사업으로 '전공'을 바꿨다. 삼성물산 패션부문도 '빈폴키즈' 사업을 철수하기로 하고 지난 2월 전국 30여개 롯데백화점에 있는 매장을 정리했다. 피아노 판매량도 '저출산 후폭풍'을 피하지 못했다. ▷기사 더보기

["청년 인구 빠르게 감소… 이대로면 10년내 산업현장 인력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꽹과리·장구·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란색 상의에 노란색 모자를 맞춰 쓴 20여명의 농악단이 운동장을 돌며 농악을 연습하고 있었다. 멀리서 볼 땐 병아리 같은 아이들인가 싶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60세를 훌쩍 넘긴 할아버지·할머니들이다. 지난달 22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 한 초등학교 건물에서 본 풍경이다.

지난달 22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 폐교를 개조해 노인 일자리 양성 기관으로 탈바꿈한 ‘청송 시니어클럽’에서 노인 20여 명이 농악 연습을 하고 있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부곡초등학교는 학생 인구 감소로 1993년 폐교됐다.

이곳은 원래 부곡초등학교 자리였다. 하지만 2008년부터 학교 교훈이 걸리는 건물 정면에 '청송시니어클럽'이라는 간판이 달렸다. 부곡초도 1980년대엔 전교생이 500명 가까이였다. 그런데 지역 인구 감소와 저출산 현상이 겹치면서 학생 수가 급격히 줄자 결국 1993년 폐교했다.

대신 지금은 노인 교육, 노인 일자리 창출을 담당하는 시니어클럽이 들어서 현재 약 1500명의 노인이 활동 중이다. 이 클럽 황진호 소장은 "일자리가 없고 자녀 교육이 힘들다는 이유 등으로 청송군 젊은 사람들이 점차 떠나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해졌다"면서 "올해 청송군 전체 인구의 32%가 65세 이상 시니어"라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부곡초처럼 폐교한 초·중·고는 1982년부터 올 3월까지 전국적으로 3726곳이다. 작년 현재 전국 중학교 수(3209곳)보다 더 많은 학교가 사라진 것이다. 1983년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인구 대체 수준인 2.1명 이하로 떨어진 해다. 시도별로는 전남이 806곳으로 가장 많고 경북 704곳, 경남 557곳, 강원 450곳, 전북 322곳, 충남 258곳, 충북 237곳 등이다.

정부는 1990년대 말부터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추진했다. 이전에는 시도교육청에 맡겨두었지만 소규모 학교에서 '복식 학급'(학년이 다른 학생들을 한 교사가 가르침)을 운영하는 등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아이들 사회성 발달에도 좋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가 나선 것이다. ▷기사 더보기

[30㎞ 통학 초등학생… 매일 등·하교에 3시간]

[전교생 60명 이하 1813곳… 두레수업·합동운동회·급식 품앗이로 버텨]

족보엔 저출산 세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7일 대전 동구 족보 전문 기업 회상사(回想社). 박병호(71) 대표는 최근에 펴낸 족보를 펼쳐보이며 말했다. "사람이 덜 태어나니 족보에도 영향을 주지요. 자손이 많을 땐 이름이 빽빽한데…." 1960년대 인구 폭증 시기엔 자손 5~6명이 기본이었는데, 요새는 자식을 안 낳거나 낳아도 한둘뿐이니 공란(空欄)이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학교 교실도 '외동 세상'으로 변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 잠일초교 1학년 3반 교실. 본지 취재진이 "부모님 말고 집에 혼자만 있는 사람 나와보세요"라고 했더니, 8명이 우르르 앞으로 나왔다. 이날 현장 학습으로 오지 않은 2명까지 합치면 이 반 34명 중 10명(29.4%)이 외동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저출산 대책은 '어떻게 하면 둘째 자녀를 낳도록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기사 더보기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모(47) 차장은 "내가 연금을 제대로 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1995년부터 국민연금에 가입해 65세가 되는 2035년부터 연금을 탄다. 이 차장은 "연금 재정 고갈 시기가 2060년이라지만 출생아 수가 확 줄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와 같은 부서에 있는 김모(37) 대리는 연금 탈 때가 2045년이다. 김 대리는 "재정이 나쁘다고 받는 돈도 확 줄여놓았는데, 재정이 나빠지면 그나마 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인구 절벽시대가 되면서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4대보험 재정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절벽으로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어들고 수명 연장으로 연금 탈 사람들은 크게 늘기 때문이다.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09년 장관 재직 때 "지금 상태로 저출산이 지속되면 국가가 존속되지 않고 어떤 4대보험 제도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정부가 2010년에 내놓은 국민연금 재정 전망은 2044년부터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면서 기금이 축나기 시작해 2060년 기금이 고갈된다는 것이다. ▷기사 더보기

["사학연금이 가장 위태… 내 수령액 반토막 날 수도"]

웬만하면 외국인 노동자를 안 받던 일본이 올 11월 베트남 간병 인력 1만명에 문을 열기로 했다. 노인은 계속 늘고 젊은이는 계속 줄어 자국 간병 인력만으론 감당할 수 없어서다. 노부모 돌보느라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이 이미 한 해 10만명이다.

일본은 전체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지 10년째다. 노인들이 24초에 한 명씩 한 해 120만명 넘게 세상을 떠나는데, 신생아는 31초에 한 명씩 연간 100만명 이하로 태어나서다. 이걸 한눈에 보여주는 게 '전국 빈집 820만 채'라는 통계다. 노부모가 사망해도 상속받을 사람이 마땅치 않아 생긴 폐가들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15년 집권 2기 아베노믹스 2탄으로 '1억 총활약사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최측근 참모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를 담당 장관에 임명했다. 합계 출산율을 현재 1.4에서 1.8로 끌어올리고, '일하는 방식 개혁'을 통해 주부와 노인을 일터로 끌어오겠다는 것이 양대 목표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는 "한 나라 인구가 한 세기 전 수준으로 축소되는 사상 초유의 현상"이라고 했다. '어떻게든 1억을 유지하면서 그 대신 전 국민이 뛰자'는 게 1억 총활약의 의미다.

그러려면 중·장년의 일터 이탈부터 막아야 한다. 일본에선 중·장년 자녀가 노부모 모시느라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비정규직·아르바이트생이 되는 '간병 이직'이 사회문제가 됐다. 부모 간병하는 동안 자녀들 소득만 아니라 국민연금 넣는 액수도 줄어들기 때문에 간병 이직은 노후 빈곤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일본 정부는 지난 9일 각료회의에서 '새로운 간병 시스템 구축'을 국정 목표로 삼기로 했다. 자녀 세대의 간병 부담을 덜어 간병 이직을 막기 위한 첫걸음이다. 간병 인프라를 확충하면서 동시에 고령화에 따른 추가 복지 지출은 연간 5000억엔(약 5조원) 선에 묶어둬야 한다는 게 일본 정부의 고민이다. ▷기사 더보기

["저출산 극복 '마법의 탄환'은 없어… 30년 내다보며 모든 정책 쏟아부어야"]

한국의 신생아 수는 급락 추세에 있다. 2003년부터 한 해 40만명대를 유지해온 신생아 수가 올해 30만명대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고, 올해 태어난 아기가 30대가 되는 2047년 전후에는 20만명대로 추락할 전망이다. 눈앞에 닥친 '인구 절벽'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특단의 대책을 서둘러 실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사 더보기

동아시아 인구문제 전문가인 더들리 포스턴(Poston·76) 미국 텍사스A&M대 교수는 20일 본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보다 앞서 인구정책을 도입한 선진국 사례를 볼 때, 온전히 출산으로 인구를 늘린 사례는 거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현재 추세로는 한국의 미래가 매우 불안해 보인다"고 했다. 출산율이 인구대체수준인 여성 1명당 아이 2.1명에 한참 못 미치는 1.17명에 그친 데다, 앞으로 늘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으면서 고령화는 미국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그는 "인구 감소가 시작되면 다음엔 연금과 건강보험 체계가 흔들리고 생산성 감소,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빠르게 진행된다"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출산·육아 수당 등 국가 보조금 등 내적 해결책만 찾고 있는데, 외적인 해결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더보기

[2040년 인구 감소, 부산이 가장 심각]

[저출산, 국정 3대 과제로…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