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內유보금 역대 최대지만… 기업들 "사내유보금=현금 아닙니다"
최근 정부는 이동통신사들이 갖고 있는 수십조원 사내유보금을 근거로 통신요금 인하 압박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사내유보금은 곳간에 쌓아놓은 현금이 아니다"면서 "여기에 징벌적으로 과세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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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장사들의 유보금은 2012년 말 515조4000억원, 2013년 말 557조7000억원, 2014년 말 602조4000억원, 2015년 말 655조원, 지난해 말 681조원 등으로 계속 늘어났다.
여기서 유보금은 기업이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에서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나눠주고 남은 '이익잉여금'과 자본 거래에서 생긴 '자본잉여금'을 합친 말이다. 유보금을 납입자본금으로 나눈 '유보율'도 2012년 1003.4%에서 4년여 만인 올해 3월 말 1223.8%로 220.4%포인트 높아졌다. 특히 최근 5년간 늘어난 유보금은 176조원을 넘어섰다.
[10대 그룹 상장사 사내 유보금 작년 말 대비 0.6%↑…역대 최고 550조원 육박]
[30대 그룹 상장사 유보금 700조 육박…5년새 176조 늘어]
'사내유보금' 논란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사내유보금'이라는 단어 자체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는 사실 용어 자체 때문에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보'라는 단어에는 투자나 임금 인상, 배당 등 기업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회사 내부에 미루어 둔다는 느낌을 준다. 또 '금(金)'이라는 단어가 붙어, 마치 '사내유보금=현금'으로 오해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용어사전에 따르면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누적된 이익 중 배당 등으로 유출된 금액을 제외하고 남아있는 금액을 뜻한다. 기업은 이를 영업 또는 투자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현금 보유를 할 수 있어 어떤 형태로든 이미 넓은 의미에서 투자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또 기업의 수익성 있는 영업활동이 지속되고 순이익을 초과해 배당을 하지 않는 한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권성수 한국회계기준원 상임위원은 "사내유보금은 국내 회계 기준은 물론, 외국 회계 기준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용어"라면서 "일본과 미국에서도 사내유보금에 해당하는 별도 용어가 없다"고 말했다.
사내유보금을 기업들이 금고에 쌓아두고 사용하지 않는 여유 재원으로 오해하면서 불필요한 마찰이 생기고 있기 때문에 회계적으로 더 적합한 용어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사 더보기
회계장부상 잉여금은 기업의 자본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잉여금으로는 사내 유보의 형태를 파악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유보금은 현금성 자산뿐만 아니라 당좌자산, 재고자산, 투자자산, 유형자산, 무형자산 등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사내유보금이 늘었다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순이익 100억원인 A사가 이를 모두 신규 설비 투자에 사용했다고 가정해보자〈그래픽 참조. 2015년 기준 이 회사 자본금은 100억원, 자본잉여금은 50억원, 이익잉여금은 100억원이다. 이 경우 유보금은 150억원, 유보율(유보금/자본금)은 150%가 된다. 2015년 이 회사는 순이익 100억원을 전부 신규 설비 투자에 쏟아부었다. 2016년 회계장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저 100억원어치의 설비가 늘어났기 때문에 이 회사의 실물자산은 100억원 증가해 모두 300억원이 된다. 그리고 이익잉여금도 100억원 늘어난 200억원으로 기록된다. 그 결과, 이 회사의 유보금은 100억원이 늘어난 250억원이 되고 유보율도 250%로 급증하게 된다. 설비 투자를 해도 유보금과 유보율이 높아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기업의 유보금이나 유보율이 높더라도 상당 수준 자금이 투자 등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보유 현금 수준은 그렇게 높지 못하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의 자산 대비 현금 비율이 점차 낮아지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자산 300억원 이상 상장·비상장 기업 7841개를 대상으로 진행한 분석보고서에서 "기업의 자산 대비 현금 보유 비율이 10년 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기업들의 자산 대비 현금 보유 비율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를 기점으로 점차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에는 평균 13.2%였는데, 2012년에는 12.2%로 감소했다. 상장 기업의 경우 14.3%에서 13.3%로 낮아졌고, 비상장 기업도 12.6%에서 11.8%로 감소했다.
한경연은 또 "기업들이 최근 들어 과도하게 현금 보유를 늘리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를 위해 한경연은 2001년부터 2004년 기간 중 재무 데이터를 근거로 기업 규모, 성장 기회, 배당, 투자 규모 등을 감안한 적정 자산대비현금비율('추정 현금비율')을 도출했다.
이를 2005년 이후 실제 자산 대비 현금비율을 비교한 결과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 전반기 동안은 추정치와 실제 현금보유비율 차이가 거의 없었으며, 2009년 이후부터는 오히려 실제 현금보유비율이 추정 현금비율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