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속옷 입을 때 만족감 느낀다" '은밀한 사치' 불황에 초고가 란제리 라펠라 인기
과시보다 자기 지향적인 가치 소비 늘어... 럭셔리 속옷이 명품 가방보다 만족도 높다
장인이 한땀 한땀 수 놓은 럭셔리 란제리… 심미성과 편안함 동시 만족

켄달 제너가 모델로 나선 라펠라 2017 프리 폴(Pre Fall) 캠페인

불황에도 고급 란제리 시장은 호황이다.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속옷도 불티나게 팔린다. 너도나도‘가성비’를 외치는 불황의 시기, 명품시장은 오히려 드러내지 않는 ‘은밀한 사치’에 주목하고 있다

청담동의 명품 속옷 매장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비싼 가방을 드는 것보다 비싼 속옷을 입을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며,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가방을 들어도, 평범한 속옷을 입으면 스스로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진짜 럭셔리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최고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명품을 소비하는 개념이 바뀌고 있다. 과시적인 소비가 아닌 자기 지향적인 가치소비로 재정립되면서, 나만을 위한 명품을 찾는 소비 트렌드가 정착되고 있다. 란제리는 자기 지향적 소비를 대표하는 품목 중 하나다.

◆ 공기 반 실크 반… 한 벌에 100만 원 훌쩍, 초고가 란제리 라펠라 인기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갤러리아백화점 웨스트 란제리 존. 이곳에는 부자들이 즐겨 입는다는 최고급 란제리 브랜드 라펠라(La Perla)가 입점해 있다. 매장에는 자수가 세밀하게 수 놓인 브라와 팬티, 매끈한 슬립과 가운들이 진열돼 있다. 새하얀 로브(Robe∙가운)를 만져보니 손가락 사이로 짜르르 흐르는 실크의 감촉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공기 반, 실크 반’의 촉감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싶었다.

웨딩용으로 반응이 좋다는 브래지어와 팬티를 추천받았다. 브라가 79만5천 원, 팬티는 35만 원, 도합 114만5천 원이었다. 전체가 자수 레이스 소재로 만들어진 슬립 역시 100만 원이 넘었다.

매장 직원은 의외의 장점을 어필했다. 바로 내구성이다. 직원은 “가격이 비싼 만큼 제값을 한다”며 “세탁기에 돌려 빨아도 옷감이 쉽게 손상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30만 원이 넘는 팬티를 세탁기에 돌리니,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이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내의 시장은 1조7000억원 규모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품목별로는 팬티와 브래지어 세트가 전체의 37.5%로 가장 많고, 팬티(34%)와 브래지어 (8.1%)가 뒤를 이어, 전체 시장에서 여성용 내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우월하다.

커스터마이징 란제리로 지칭되는 라펠라 메종 골드 에디션 제품.

2013년 국내에 상륙한 이태리 브랜드 라펠라는 국내 속옷 시장에 수입 란제리 유행을 주도한 주역이다. 1954년 코르셋 제조업 전문가 아다 마조티(Ada Masotti)에 의해 설립된 라펠라는 이탈리아의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한 초고가 란제리 브랜드로, 여성들 사이에서는 이태리 여행을 가면 꼭 사와야 하는 명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라펠라는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 연간 40~50%의 매출 신장률을 보이며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내 매장은 8개로 중국(12개)에 이어 두 번 째로 매장이 많다. 청담동에 위치한 라펠라 부티크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매장으로, 여성용 란제리와 남성용 속옷, 남녀 기성복과 액세서리, 오뜨꾸틔르 등 브랜드의 전 라인이 구성돼 있다.

라펠라는 저명인사들이 선호하는 란제리로도 유명하다. 모나코 캐롤라인 공주와 일본 마사코 황태자비를 비롯해 기네스 펠트로, 빅토리아 베컴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입는다. 팝스타 마돈나와 비욘세는 콘서트 무대에서 꼭 라펠라의 란제리를 착용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 연예인들에게도 인기가 좋아, 청담동 라펠라 부티크에서는 고소영, 이혜영, 김혜수 등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종종 나온다.

라펠라는 여성들 사이에선 이태리 여행을 가면 꼭 사와야 명품으로 꼽힌다.

정유미 라펠라코리아 마케팅부장은 “주 고객층은 사회 활동이 왕성한 30~40대 여성들로, 대부분 해외 경험이 많거나 자유롭고 도전적인 삶을 사는 커리어 우먼이다. 이들은 무조건 유명한 명품을 선호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명품을 찾는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속옷 하나를 입더라도 가장 좋은 것을 입으려는 거 같다”고 말했다.

◆ 장인이 한땀 한땀 수 놓은 럭셔리 란제리… 심미성과 편안함 동시 만족

값비싼 란제리의 장점은 고급 소재가 주는 섬세한 감촉과 편한 착용감이다. 란제리 디자이너 송은주 씨는 “라펠라는 수입 란제리 중에서도 최고급 브랜드에 속한다. 오랜 브랜드 역사만큼 패턴이나 봉제에 있어 탁월한 기술력을 지니고 있다. 레이스나 자수를 다루는 기술 역시 다른 브랜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수준”이라고 평했다.

라펠라의 란제리 중 가장 인기가 있는 메종(Maison) 컬렉션은 이태리 코모(Como) 지역에서 생산되는 실크를 사용한다. 장인이 직접 튤 레이스 위에 한땀 한땀 새기는 프라스탈리오(Frastaglio) 기법은 화려하고도 우아한 라펠라의 란제리를 대변하는 기술이다. 회사 측은 100% 친환경 소재이기 때문에 통풍이 잘되고 부드러워 알레르기가 생길 염려가 없다고 말한다.

라펠라의 란제리는 이태리 실크에 프라스탈리오 자수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프라스탈리오란 피렌체 장인의 솜씨를 일컫는다..

MTM(Made To Measure) 서비스로 진행되는 메종 골드 에디션은 최상급 디자인을 선호하는 고객들을 위한 커스터마이징 란제리다. 주문과 함께 피렌체의 장인이 직접 금색 실로 손자수를 새겨 제작하는 이 컬렉션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란제리로 더 가치가 높다. 맞춤 내용에 따라 가격이 천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극소수지만 국내에서도 재벌과 연예인을 중심으로 맞춤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라펠라의 란제리를 즐겨 입는다는 이세진 씨(39)는 “속옷은 몸에 가장 밀착되기 때문에 좋은 제품을 입어야 한다. 자카드 레이스로 만들어진 일반 속옷은 금세 레이스가 찢어지거나 착용감도 껄끄럽지만, 실크 사로 만든 수입 레이스는 피부에 닿는 촉감이 부드러워 더 오래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부자 아니어도 속옷은 명품을 입는다? 럭셔리 란제리는 나를 위한 최고의 선택

부자들에게 100만원 짜리 속옷 한 벌을 사는 것은 적정 수준의 소비일 수 있다. 하지만 비싼 속옷을 입는 이들 중에는 흔히 말하는 부자가 아닌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비싼 속옷을 입는 이유는 특별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백화점 수입 란제리 매장에서 만난 김명희 씨(42∙가명)는 “예전엔 속옷에 신경을 안 썼는데, 우연히 백화점에서 할인하는 걸 보고 수입 란제리를 구매했다. 위아래 세트 속옷을 처음 입었는데, 확실히 옷 태가 예쁘게 났다. 왠지 모를 자신감도 생기는 거 같아 특별한 날엔 좋은 속옷을 입는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라펠라 청담 부티크 전경

기자가 만난 이들은 모두 고급 란제리를 입는 이유에 대해 ‘자기만족’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유미 라펠라 부장은 “가방과 신발처럼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을 중시하던 과거와 달리, 자신을 위한 소비에 가치를 두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에게 란제리는 ‘나 자신을 위한 최고의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소비 경향은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일수록 더 두드러진다. 남영비비안이 전개하는 프랑스 란제리 브랜드 바바라(Barbara)는 전국 23개 매장 중 매출 상위 3개 매장이 모두 강남에 있는데, 이들 매장의 매출이 전체의 25%를 차지한다. 이정은 홍보실 과장은 “란제리 시장의 성장세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수입 라벨은 기복 없이 꾸준한 신장세를 보인다”며 “가격이 더 높은 직수입 라인만을 고수하는 고객도 꽤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내의 시장은 신영와코르, 남영비비안, BYC 등 전통기업들이 장악해 왔지만, 최근 들어 ‘속옷의 패션화’ 니즈가 확산되면서 수입, 스포츠, SPA 브랜드 등으로 수요가 분산되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