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유럽 여행을 하던 김용주(32)씨 부부는 체코 프라하에 도착한 지 1시간 만에 700유로 중 500유로를 잃었다. 환전 사기를 당한 것이다. 사건은 유로를 체코 화폐 코루나(koruna)로 바꾸면서 시작됐다. 김씨는 3박4일간 사용할 돈 700유로를 챙겨 호텔 근처 환전소로 향했다. 모두 환전하니 1만9000코루나쯤 됐다. 체코 지폐 단위는 5000코루나 지폐부터 20코루나 지폐까지 다양한데, 환전소에서는 대부분 5000·2000코루나 지폐를 건네줬다. 5000코루나짜리는 우리 돈으로 약 20만원 하는 고액권이다. 잔돈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망설이던 김씨 앞에 때마침 양복을 빼입은 신사가 나타났다. 백발에 나이도 지긋해 보인 신사가 유창한 영어로 "고액권이 필요한데 바꿔줄 수 있겠느냐"고 하자 마침 작은 단위의 돈이 필요했던 김씨는 "나한테 1만9000코루나가 있는데 모두 5000 혹은 2000단위 고액권이니 교환하자"고 했다. 신사는 주머니에서 500코루나짜리 지폐를 꺼내 숫자를 세더니 "지금 가진 게 26장밖에 없다"며 돈을 내밀었다. 김씨는 1만3000코루나를 넘기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날 저녁 식당에서 아내와 식사를 마친 뒤 김씨는 신사가 건네줬던 500코루나 지폐를 식당 측에 건넸다가 거절당했다. 식당 주인은 "이 돈은 체코의 코루나가 아닌 벨라루스 돈 루블(ruble)"이라며 "1000루블에 2코루나쯤 하는 화폐"라고 말했다. 김씨는 "1만3000코루나를 1만3000루블과 바꾸었으니 500유로(약 63만원)를 1300원과 바꾼 셈"이라며 쓰게 웃었다. 이처럼 벨라루스 화폐는 체코에서 환전 사기용으로 쓰이고 있다. 환전 사기 피해자는 대부분 체코 지폐에 익숙하지 않은 관광객들로, 우리나라 관광객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172만명이 가입한 네이버 유럽 여행 카페 '유랑'에는 김씨와 비슷한 피해를 봤다는 경험담이 매년 꾸준히 올라온다.
우리나라 원화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벨라루스 화폐인 루블의 현재 환율은 1000루블에 100원이다. 체코 코루나는 1000코루나에 4만8000원 정도다. 루블과 코루나의 화폐 가치 차는 거의 500배에 가까운 셈이다. 벨라루스 무역관으로 근무했던 KOTRA 윤정혁 산업분석팀장은 "벨라루스 화폐의 가치가 아주 낮아서 지난해 7월엔 1만분의 1로 화폐개혁까지 단행했다"며 "자국민들도 루블이 아닌 미 달러로 저축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프라하에서 환전 사기를 당했다는 최여진(26)씨도 "코루나와 루블이 비슷해서 처음 보는 사람은 헷갈리기 아주 쉽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폐에 쓰여 있는 체코어와 러시아어 알파벳도 비슷해 당연히 코루나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500이나 1000단위 지폐가 흔치 않다는 점도 피해자들이 쉽게 속아 넘어가는 이유다. 프라하에서 유학 중인 대학생 심모(24)씨는 "처음에는 500코루나가 아주 큰 돈이라는 느낌이라 낯선 데다 쓰기도 무섭다"며 "서양에서는 500단위 지폐를 사용하는 나라가 흔치 않아 유학생들도 처음에 많이 당한다"고 했다.
외교부는 "관광객의 경우 신고를 하는 경우도 드물다"며 "경찰을 부르자니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고 적게는 10만원, 많게는 50만원가량을 사기당하다 보니 액땜 삼아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