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졌으면 떨어졌다 말이라도 해주지, 마냥 기다리다 보니 나 자신이 한없이 비참해져요.”

서강대 국어국문과에 재학 중인 박모(23)씨는 벌써 한 달 전 한 홍보업체 인턴 전형에 지원했지만, 아직 회사에서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회사에서 이메일로 관련 서류를 보내라기에 며칠을 꼬박 새워 보냈는데, 아직까지 서류를 보완하라던지 면접을 오라던지 이도 저도 아니면 떨어졌다든지 등의 반응을 못 받은 것이다. 박씨는 “인턴 서류전형 발표일이 따로 있는지도 알 길이 없어 마냥 기다리고만 있다”며 “여러 기업에서 이런 일을 겪고 보니 땅을 파고 숨고 싶을 정도로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한숨 쉬었다.

면접 기다리는 구직자들.

외국계 헤드헌팅 기업에 지원했던 박모(24)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박씨는 “자격조건이 맞고 평소 관심 있던 분야라 곧장 지원했는데 연락이 없어서 한 달 내내 다른데 지원도 못 하고 묶여 있었다”라며 “한 달 뒤쯤 같은 내용으로 채용공고가 다시 올라온 걸 발견한 후에야 ‘아, 탈락했구나’ 하고 알았다”고 말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입사 희망 기업으로부터 탈락 여부를 제대로 통보받지 못해 두 번 우는 취업준비생들이 양산되고 있다.

구직 관련 정보를 교류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합불(합격·불합격) 통보 없는 기업들’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올 상반기 국내 한 유통 대기업 영업 인턴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박소연(28)씨는 “결과가 하도 안 나와 뒤늦게 확인해보니 탈락이었다. 합격자한테만 연락이 갔나 보다고 생각은 하지만, 무시당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장을 찾은 구직자들.

본지가 취업포털 ‘사람인’에서 공시한 5월 채용공고를 전수 조사해보니, 405건 중 229건(56.4%)이 서류 합격일을 명시해놓지 않았다.

회사 인사 담당자들은 ‘업무 효율성’을 이유로 서류 합격일을 통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지원자들이 워낙 많아 탈락자들에게까지 일일이 결과를 통보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LS그룹 계열사 인사팀 관계자는 “모집 부문별로 서류 검토에 걸리는 시간이 다른 경우도 많아 별도로 합격자 발표일을 명기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 잡지사 인사담당자는 “따로 메일이나 전화로 연락해온 지원자에게는 지원 결과를 말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합격자에게만 통보하는 게 관례”라고 말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상반기 채용에서 탈락된 경험이 있는 구직자 819명에게 당시 탈락통보를 받았는지를 물었더니, ‘탈락 통보를 받지 못했다’라고 답한 구직자가 절반이 넘는 61.8%였다. 구직자의 38.2%만 따로 회사로부터 탈락 사실을 전달받았다고 답했다. 설문에 응답한 이들 중 55.9%는 ‘합격통보가 없어 탈락했겠거니 생각했다’고 답했으며, 5.9%는 ‘직접 연락을 취해 당락 여부를 확인해서야 탈락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기업형태별로 보면 중소기업에 지원했을 때 입사 불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다는 구직자가 71%로 가장 많았고, 외국계 기업(51%), 공기업(43.8%), 대기업(34%)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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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탈락자들에게 무심한 기업들이지만, 일부 대기업 사이에선 탈락한 입사 지원자들에게 세심한 피드백을 해주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들에게 베푸는 ‘작은 배려’가 기업 이미지 개선 및 장기 충성고객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SK이노베이션은 올 상반기 지원자 전원에게 접수 마감 일시, 합격자 발표 일정, 면접 장소 등을 문자로 알렸고, 롯데그룹은 불합격자들에게 면접 전형에 따른 점수를 그래프로 나타낸 메일을 보내고 있다. 지원자 전체와 합격자 평균, 자신의 점수를 비교해볼 수 있게 해 추후 구직 활동에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다. 임민욱 사람인 HR팀장은 “물론 기업 입장에서 인사 관련 일정을 낱낱이 공개하기 어려울 수는 있지만, 불합격 통보 자체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기업들이 지원자들을 배려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