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리가 아니라 피츠버그(과거 심각한 스모그 현상을 겪었던 철강도시)를 대표하기 위해 선출됐다. 오늘부터 미국은 파리 비구속 조항 이행을 전면 중단하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기간부터 공언해온대로 1일(현지시각)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시리아와 니카라과 이은 세번째 파리기후협약 불참 국가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연설을 하고 있다

파리기후협약은 지난 2015년 12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195개국이 서명한 국제적인 협약이다. 협약에 참여한 195개국은 각국의 사정에 맞춰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자율적으로 세운 후, 5년마다 목표를 조금씩 높여 제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탈퇴 선언으로 파리 기후변화협약 목표 실행에 타격을 입게 됐다.

◆ 에너지 패러다임 역행하는 트럼프, 희비 엇갈린 기업들

미국의 파리기후협정 탈퇴 발표 소식에 증권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트럼프 정권의 정책 방향이 ‘녹색성장’ 대신 ‘기존 산업들과 화석에너지 패러다임’을 선택했다는 분석에 관련 기업들의 주가도 희비가 엇갈렸다.

트럼프의 이번 결정으로 석탄 기업들이 최대 이익을 얻을 것이란 전망에 석탄 기업들의 주가가 올랐다. 오클라호마주에 본사를 두고 석탄을 생산하는 얼라이언스 리소스 파트너스(NASDAQ:ARLP)의 주가는 이날 종가 대비 2.33% 상승해 22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해 4월 씨티그룹으로부터 8억 달러에 달하는 긴급자금을 수혈받았던 피바디에너지(NYSE:BTU) 의 장중 거래는 23.53달러까지 하락했다가 다시 상승 곡선을 그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겠다는 내용의 선언서를 낭독하자 피바디에너지 주가는 24.06달러까지 올랐다.

셰일가스주도 상승세를 보였다. 미국이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공식화하면서 트럼프의 공약이 현실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기간 동안 산유국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연료가격 자체를 낮춰 경기부양을 꾀하겠다고 주장해왔다. 코노코필립스(NYSE:COP), EOG 리소스(NYSE:EOG), 데본 에너지(NYSE:DVN) 등이 0.10~0.85% 상승세를 보였다.

반대로 대체에너지 산업군은 타격을 입었다. 관련 예산이 급갑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2025년까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보다 26~28% 줄이고, 이를 위해 2020년까지 30억 달러를 지원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현재까지 지출된 돈은 10억 달러다.

종목별로 전기차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주도해오던 테슬라(NASDAQ:TSLA)의 주가는 전일 종가 대비 0.19% 하락한 340.37달러에 장을 마쳤다. 태양광주인 퍼스트솔라(NASDAQ:FSLR) 주가는 이날 종가 대비 0.49% 하락한 38.2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거래 초기 최고 8.20달러에 거래되던 선파워(NASDAQ:SPWR)의 가격 또한 7.94달러로 떨어졌다.

◆ 파리기후협약 탈퇴 “美를 위한 길” vs “美 국민에게 오히려 손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약 탈퇴가 미국의 주권 회복을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외치며 대통령직에 당선한 그는 이번 결정이 “미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러스트벨트 지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선 승리 소식에 환호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환경보다 미국 경제를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은 “트럼프를 백악관의 주인으로 만들어준 자동차 기업과 제조업체, 석유·석탄 등의 화석에너지기업, 건설업계로부터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 업계는 미 대선 캠페인전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우군으로 활동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시절 강력하게 주장했던 ‘러스트벨트(미국 제조업의 호황을 구가했던 중심지)’의 부흥도 탄소배출 없이는 실현하기 어려운 공약이다.

하지만 이번 파리협약 탈퇴가 미국 전체 국민들에게는 오히려 손해인 결정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CNBC는 “미국의 결정은 중국에게만 득이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미래를 장기적으로 내다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리슈오 그린피스 동아시아 총재는 “미국의 부재는 곧 중국에게 엄청난 기회로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설 자리를 잃고 중국의 도약을 도와주는 꼴이라는 것이다. CNBC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TPP 탈퇴를 선언한 뒤 세계 무역시장에서 중국의 입지는 더 돈독해졌다.

◆ 美 기업들 앞다퉈 미국의 파리기후협약 공식 탈퇴 우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발표하자 미국 내 기업들이 업종을 불문하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 선언 직후 골드만삭스 대표의 첫 번째 트위터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대표는 트위터에 “트럼프가 파리기후협약을 공식 탈퇴하겠다고 밝힌 것은 환경문제에 대한 미국의 주도권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제너럴일레트릭스(GE)의 최고경영자(CEO) 제프리 이멜트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트럼프의 기후협약 탈퇴 결정은 매우 실망스럽다. 기후변화는 이미 발생하고 있고 이젠 국가가 아닌 기업들이 앞장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를 제외한 미국 28개 주요 기업들이 미국의 파리기후협약 탈퇴 소식에 우려를 나타냈다. 애플,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갭, 모건스탠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뉴욕타임스에 트럼프의 파리기후협약에 머무르길 촉구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대체에너지 쪽으로 사업 체질 개선에 나선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과 코노코필립스 등도 파리기후협약을 지지해왔다. 최근 엑손모빌은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만류하는 내용의 서한을 백악관에 보낸 바 있다.

한편 일부에서는 트럼프의 탈퇴선언이 상징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트럼프가 탈퇴 선언을 밝혔지만 2019년 11월까지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현실화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교체될 경우 상황이 또 바뀔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다음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2020년 11월까지 탈퇴하기 힘들 것"이라며 "다음 대선에서 ‘기후변화’가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