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대학교 캠퍼스의 봄 풍경. 현직 대학교 시간강사였던 저자는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더 위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는 말로 대학의 민얼굴을 담아냈다. 그는 이 와중에도 ‘상처가 꽃이 되는 순간’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인용하며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서술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라디오를 듣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것도 새벽 2시에 말이다.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이 시간에 깨어 라디오를 듣는 사람 중 취업 준비생과 택시 기사, 대리운전 기사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직업이 모두 세 가지라고 쓴 한 남자는 한국장학재단에서 받은 학자금 대출을 아직 갚지 못해, 회사 퇴근 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가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서너 시간, 이 터널을 언제쯤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그는 씁쓸해했다. 이제 나는 절망을 통과하지 않고 희망을 말하는 법을 모른다.

"사흘 후에 이자 납입일이니 꼭 신경 좀 써주세요, 하고 전화가 왔기에 네 알겠습니다, 자꾸 연체가 되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얼마를 준비하면 되나요, 하고 물었더니 네 천육백원이에요 하고 답했다. 나는 혹시 금액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서 재차 확인했다… 너무도 초라한 인생이다, 싶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읽다가 이 부분에서 멈칫했다. 대학원 연구실에 돌아온 한 남자가 굿네이버스 홈페이지에서 2년 넘게 후원해온 네팔 아이 정기 후원을 취소하는 장면에선 울음이 터졌다. 서른 넘은 그가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선택한 선한 기부를 끝내 지지해주지 못하는 사회가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학자금 대출 상환 독촉 전화를 받던 날, 연구실 책상에 붙여놓은 아이의 사진을 떼어 책상 서랍에 넣던 날, 그가 마신 '혼술'의 풍경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내 친구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309동 1201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는 이름 대신 연구실 번호를 적었다. 4대 보험조차 보장되지 않는 4개월짜리 비정규직 노동자. 2008년 봄 그는 학과 사무실의 대학원생 막내였다. 오전 8시부터 오후까지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했다. 조교들은 월급을 받지만 최저 시급에 미치지 못한다. 그들은 한 달 평균 260시간을 넘게 일하고 80만원을 받아간다.

이후 1201호는 조교 시절을 지나 일주일에 네 시간 강의하는 강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 '4시간' 안에는 그가 강의를 준비하고, 학생들의 과제를 첨삭하고, 개인 면담을 하는 며칠분의 노동 시간은 제외된다. 숨겨진 노동이 더 많은 직업의 특성상, 사람들은 시간강사들이 얼마나 박봉에 시달리는지 깨닫지 못한다. 대학 시간강사 중 부모가 아직 그들의 건강보험 부양자인 경우가 많다. 대학이 시간강사에게 직장 건강보험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은 기업보다 한발 앞서 비정규직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해냈다. 조금 젊은 얼굴이 보인다 싶으면, 예외 없이 2년짜리 계약 비정규직이다… 교수 선발에서도 정년 트랙, 비정년 트랙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일컫는 대학가 신조어다. 정년을 채운 교수들이 퇴임하면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를 지우고 비정년 트랙 강의 전담 교수를 채워 넣는다. 그리고 해임한다. 대학은 나름대로 신자유주의적 생태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학부생과 대학원생, 심지어는 졸업생의 값싼 노동력으로 행정의 최전선을 채운다. 4대 보험이나 퇴직금 명목조차 없는 4개월짜리 계약서를 받아든 시간강사들이, 2년짜리 비정년 트랙 교수들이 강의 대부분을 책임진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나는 복잡한 이해타산과 정치 공학을 떠나 상식에 근거한 원칙 하나를 생각했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자동차의 왼쪽 바퀴를 만든 사람과 오른쪽 바퀴를 만든 사람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임금 격차가 2배 가까이 난다는 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차이가 점점 더 커질수록 이 사회가 지옥이 될 것임은 명백하다. 1201호가 대학을 나와 생계를 위해 맥도날드에 취직하는 장면을 보면서 책 몇 권을 떠올렸다. 그중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있었다. 나는 그가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더 위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라는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1년 3개월 동안의 시간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생각하다가, 점점 참담해졌다.

학회에 내야 하는 논문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료 인용을 줄이고, 문단을 통으로 삭제하는 가난한 연구자는 어떻게 이 배고픈 시절을 견뎌냈을까. 학회는 원고지 120장 기준으로 1장이 늘어날 때마다 5000원씩을 더 받는다고 했다. 문득 의상비, 콩쿠르 참여비 때문에 등골이 휜다는 무용수들과 포토 리뷰에 참가하기 위해 참가비 수십만원을 내야 하는 사진가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나는 지금껏 많은 논문을 썼지만, 아직 한 번도 '글값'을 받아보지 못했다… 물론 내 연구가 학술진흥재단 등재지에 게재 판정을 받고 좋은 연구자의 논문에 피인용된 것을 봤을 때 느끼는 기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다. 하지만 연구자에게 연구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숭고'가 아닌 '생계'가 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그래야 강의에 충실할 수 있다."

309동 1201호. 그의 이름은 김민섭. 강의를 두려워했던 그가 학생들을 만나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깨달아가며 성장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뭉클했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교수님은 지금 행복하세요? 후회하지 않으세요?" 묻는 제자의 질문에 그가 답하는 장면을 숨죽여 읽었다. 서른. 프리마켓에서 자기 그림을 500원, 1000원에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비싸니까 그림 몇 장 더 끼워달라는 사람들과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 화가의 사연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힘들어하는 화가에게 들려줄 말이 꼭 이 책 안에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후회한단다… 하지만 시간을 돌이켜 스무 살 나에게 어느 길을 걷겠니, 하고 다시 묻는다면, 역시 죽을 만큼 고민할 거야. 지금 행복하냐고 물으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어… 그런데 적어도 나에게 부끄러운 선택을 하지는 않았단다. 그래서 나는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남은 한마디를 하려 했다. '적어도 자신에게 부끄러운 선택을 하지 않으면…' 하고 말을 이으려는데 L이 '그러면 버틸 수 있다는 거군요' 하고 말했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조금 더 버틸 수 있다는 말은 희망에 가까울까, 절망에 가까운 말일까. 이 책을 쓰고 난 후, 그는 '대리사회'라는 제목의 사회학 서적을 썼다. 책을 읽으며 나는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 현장에서 치열하게 느끼고 배우는 한 학자의 성장을 느낄 수 있었다.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란 말을 수도 없이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을 믿는 이상, 나는 그것의 증거를 조금 더 수집하고 발견하고 싶다. 이 책의 저자처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 1201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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