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 부자들의 명품… 버킨백, 홍콩 경매서 4억 원 최고가 낙찰
작년 순이익 1조 3천억 원, 전년 대비 13% 증가… '희소성' 전략이 비결
아르노 LVMH 회장도 탐낸 에르메스… 철저한 가족경영체제로 운영
한국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에르메스 미술상(Missulsang)', 국내 미술계 꽃피우다
지난달 31일 크리스티 홍콩에서 18캐럿 백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흰색 악어가죽 에르메스(Hermes) 버킨백이 294만 홍콩 달러(약 4억2220만 원)에 낙찰됐다. 이는 핸드백 경매 사상 최고 낙찰가다.
에르메스 핸드백은 ‘핸드백계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는 최고의 명품이다. 최고급 가죽으로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제작하고 1000만 원이 넘는 가격에도 몇 년을 기다려야 받아볼 수 있어 ‘최후의 명품’으로 여겨진다.
명품 업계의 고전에도 불구하고 에르메스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다. 이 회사의 지난해 순이익은 11억 유로(약 1조 3870억 원)로 전년 대비 13%가 증가했다. 매출은 52억 유로(6조 2898억 원)로 전년에 비해 7.5%가 올랐다.
파리와 브뤼셀 테러 이후 관광객들이 감소하면서 유럽 전반을 덮친 불황에도 에르메스는 거의 타격을 입지 않았다. 에르메스의 매출은 프랑스에서 5%, 유럽 전체에서 8%가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에르메스를 “소비자들의 취향이나 경기의 불확실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 명품 위의 명품”이라고 평가한다.
◆ 지구상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핸드백… 2~3년은 기본
국내에서도 에르메스의 인기는 독보적이다.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에르메스의 매출은 전년 대비 17%대로 압도적인 성장률을 보였다. 에르메스의 대표 제품인 버킨(Birkin)백과 켈리(Kelly)백의 가격은 1400만~7000만 원대로, 400만~1000만 원대인 샤넬과 100만~500만 원대인 루이비통보다 훨씬 비싸다.
에르메스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바로 희소성과 프리미엄이다. 에르메스는 장인정신을 강조하며 생산량을 한정하는 희소성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버킨백과 켈리백 등 유명 제품은 에르메스 VIP 고객들도 2~3년은 기다려야 구매할 수 있다. 대기자 명단 덕에 에르메스는 소매업 사상 최악의 해였던 2001년 9.11테러 이후에도 매출이 늘었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에서도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사만다 존스는 5년이라는 기다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유명 배우 루시 리우의 이름을 팔아 버킨백을 샀다가 도로 빼앗긴다. 이 에피소드 방영 이후 버킨백의 대기자 명단은 세 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에르메스는 생산보다 수요가 많아 더 갈망하게 한다. 다른 업체들도 이런 식의 방식을 시도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워낙 핸드백을 구하기 어렵다 보니 실제로는 재고가 있는데도 없는 척을 한다거나, VIP나 회사 관계자를 아는 사람들은 더 빨리 구할 수 있다는 루머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악셀 뒤마(Axel Dumas) 최고경영자(CEO)는 “(전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주문해도 다른 고객과 똑같이 기다려야 한다”고 답한 바 있다.
◆ 상위 1% 부자들의 로망 ‘캘리백’과 ‘버킨백’
에르메스 그룹의 매출을 견인하는 것은 가죽 제품이다. 에르메스는 가죽 제품을 비롯해 의류, 시계, 스카프, 향수, 리빙 제품 등 16개 제품군을 생산하고 있지만, 가죽 제품의 매출액이 전체의 50%에 달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버킨백과 켈리백이다. 이들은 유명인들과의 특별한 스토리로 선망의 대상이 됐다.
버킨백은 영국 출신의 프랑스 여배우 제인 버킨을 위해 디자인됐다. 1984년 비행기를 탄 제인 버킨은 우연히 에르메스의 장 루이 뒤마(Jean Louis Dumas) 사장의 옆자리에 앉게 됐는데, 정리되지 않은 제인 버킨의 짐을 본 뒤마 사장은 ‘물건이 다 들어갈 만한 커다란 가방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후 버킨백을 탄생시켰다. 켈리백 역시 남다른 사연이 있다. 1930년대 만들어진 이 핸드백은 1956년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한 배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 후 주목받으면서 ‘켈리백’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에르메스 핸드백은 국내외 유명 인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켈리백을 비롯한 다양한 가방과 스카프를 즐겨 착용하며, 가수이자 디자이너인 빅토리아 베컴은 100개가 넘는 버킨백을 모을 만큼 에르메스 마니아로 알려진다. 홍라희 전 리움 관장, 대상그룹 임세령 상무, 배우 윤여정, 심은하 등도 에르메스 백을 들었다.
상위 1%가 드는 ‘명품 중으로 명품’으로 여겨지다 보니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안종범 전 수석 뇌물 수수 사건을 비롯해 지난해 '대우조선 비리'에서도 고위층 로비 제품으로 에르메스 핸드백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유명세를 치렀다.
백화점 업계 한 관계자는 “샤넬이나 루이비통은 어느 정도 대중화돼 명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진 반면, 에르메스는 몇 년을 기다려야 겨우 살 수 있고 가격도 초고가라 명품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다. 에르메스는 상위 1% 계층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브랜드"라고 말했다.
◆ 아르노 LVMH 회장도 탐낸 에르메스… 철저한 가족경영체제로 운영
에르메스는 가족경영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세계적인 명품 업체 LVMH가 에르메스의 인수합병(M&A)을 시도했다 실패한 사건은 회사의 가족경영 방식을 더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1837년 마구 용품과 안장을 만들던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es)에 의해 설립된 에르메스는 창업 이래 가족 경영을 이어나가다 외부 경영인을 영입한다. 그러나 2014년 LVMH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가 가시화되자, 가문의 모든 주주가 모여 지주회사를 설립해 브랜드를 지켰다. 현재 에르메스의 최고경영자인 악셀 뒤마는 창업주 6대손으로 버킨백을 만든 장 루이 뒤마의 조카다.
루이비통, 셀린느, 불가리 등 60여 개 브랜드를 보유한 ‘명품 공룡’ LVMH가 에르메스에 눈독을 들인 이유는 높은 브랜드 가치 때문이다. 시장조사회사 밀워드브라운은 루이비통의 브랜드 가치가 100이라 할 때 에르메스의 가치는 84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LVMH에게 에르메스를 갖는 것은 곧 세계 명품 업계를 장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다른 명품보다 ‘0’이 더 붙는 비싼 가격에도 에르메스는 스스로 사치품이길 거부한다. 이와 관련해 악셀 뒤마 CEO는 한 인터뷰에서 “에르메스는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다. 창조적인 장인(匠人)”이라 주장했다.
대량생산과 분업화를 도입하는 명품 시장의 흐름 속에서도 에르메스는 여전히 장인제 생산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하나의 핸드백을 만들기까지 모든 과정은 장인 한 사람이 도맡는다. 가죽 제품을 만드는 장인은 3000여 명이고, 가방 당 평균 제작 시간은 15시간이다. 한 명당 한 달에 10개 정도밖에 만들 수 없다.
최근 악셀 뒤마 CEO는 넘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250명의 가죽 노동자를 고용하고 캘리백과 버킨백의 생산라인을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를 두고 에르메스 가방의 희소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에르메스는 벤틀리를 위한 가죽 인테리어나 가죽 농구공 같은 특별 주문을 받는 ‘쁘띠h’라는 레이블을 갖고 있다. 작년에는 애플과 협력해 럭셔리 애플워치 출시하기도 했다. 이 협업은 기능 중심의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럭셔리 패션 재화로 자리잡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 한국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에르메스 미술상(Missulsang)’… 국내 미술계를 꽃피우다
에르메스는 국내 현대 미술계에 기여한 바가 크다. 에르메스는 2000년부터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제정해 한국 작가를 지원하고 있다. 에르메스 미술상은 한국의 ‘터너 프라이즈’라 불릴 만큼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김범, 서도호, 박찬경, 구정화 등 유명 작가를 배출했다.
에르메스 재단은 한국어 발음 '미술상(Missulsang)’을 그대로 사용하며, 미술상 자체를 해외 문화 후원을 상징하는 말로 통용하고 있다. 에르메스는 브뤼셀, 싱가포르, 도쿄 등에서 현대미술품 전시를 열고 있지만, 미술상을 제정해 작가를 지원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까뜨린느 츠키니스(Catherine Tsekenis) 에르메스 재단 디렉터는 “1997년 에르메스의 한국 진출을 앞둔 당시 신진 작가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던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읽고 미술상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올해 미술상은 오민 작가가 선정됐다. 영상과 음악 설치작업을 주로 하는 오민 작가는 4개월간 프랑스 파리에 체류한 뒤 내년 서울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에르메스 재단의 관심은 다양한 예술 분야를 넘나든다. 성인용품을 전시하거나 사회나 기업에 비판적인 작가에게 상을 주기도 한다. ‘최고의 명품’이라는 타이틀에 비해 다소 튀는 행보다.
이에 대해 까뜨린느 츠키니스 디렉터는 “예술가의 역할로 보면 비판적 시각을 갖는 건 매우 당연하다. 신진 작가가 창의적인 작품으로 사회에 참신한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말했다.
에르메스코리아는 지난달 플래그십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를 새 단장했다. 이 매장은 에르메스의 장인정신과 한국 문화의 상호 교류를 증진하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새 단장을 기념해 전시 공간인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는 국내 유망 작가들과 함께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 전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