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동강 난 천안함(1200t급) 한가운데 섰다. 선체(船體)를 올려다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두꺼운 강철판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고, 전선 수백 가닥이 바람에 힘없이 흔들렸다. "검은 페인트가 칠해진 부분이 흘수선(吃水線·배와 수면이 만나는 선)입니다. 밑에 있어야 할 흘수선이 천장에 가서 붙은 게 보이십니까? 좌초가 아닌 강력한 외부 폭발로 침몰했다는 증거입니다." 흰 해군 정복(正服)을 입은 안내장교 김인지 중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 2010년 3월 26일 서해 백령도 바다에서 초계(哨戒) 임무 중이던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한 지 7년. 해군은 지난 1월 2일 경기도 평택 2함대 내 전시된 선체 바로 옆에 천안함 내부를 재현해 놓은 추모 공간 천안함기념관을 열었다.

지난 26일 경기 평택시 천안함기념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두 동강 난 천안함 선체 아래에서 해군 안내장교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천안함기념관은 북한군 어뢰에 피격돼 전사한 46용사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1월 개관했다.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연면적 1340㎡)인 천안함기념관은 함정의 옆모습과 뫼비우스 띠를 본떠 만들었다. 천안함 46용사와 호국 정신을 끝이 없는 뫼비우스 띠처럼 영원히 기억하자는 의미다. 전시관으로 들어서니 시침과 분침이 '9시 22분'에 멈춘 대형 벽시계가 보였다. 7년 전 천안함이 피격된 시각이다. 46용사 명패(名牌)를 지나 천안함 내부가 눈앞에 펼쳐졌다. 침몰하기 전 조종실·기관실·식당·침실의 모습이 재현돼 있다. 각 구역엔 희생된 장병의 숫자가 적혔다. 함미(艦尾) 쪽에 있던 침실에선 가장 많은 15명이 전사(戰死)했다. 배 벽에 간이침대 6개가 3층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김 중위는 "수병들은 고된 함상 근무를 마치고 두께 10㎝ 정도 되는 매트리스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침대 옆에는 기념관이 개관하면서 처음으로 공개된 천안함 유품이 전시돼 있다. 아직 끈이 묶여 있는 보급 운동화, 면도 크림, 팔굽혀펴기용 운동기구 등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기념관 중앙으로 나오면 3월 26일 폭침(爆沈)부터 4월 24일 뱃머리 부분 인양까지 29일간의 사투(死鬪) 과정을 볼 수 있다. 모퉁이를 돌면 20m 길이 터널이 나온다. 조국의 수호신으로 부활한 46용사를 추모하는 공간이다. 해군 의장대가 연주한 진혼곡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터널 끝에는 46용사의 군번줄을 매달아 놓은 추모 공간이 있다. 군번줄 밑에 누군가 헌화(獻花)한 국화꽃 한 송이가 보였다. 곧바로 유품실로 이어진다. 46용사의 영정과 프로필 아래 무공훈장 증서, 학위 수여증, 신분증, 가족사진 등이 있다. 부모가 가지런히 다려 놓은 군복이 가장 많았다.

["천안함 46용사는 지금도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습니다"]

유가족의 추모 활동을 기리는 공간엔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씨가 기증한 '3·26 기관총' 두 정이 있다. 윤씨가 해군에 기탁한 유족 보상금 1억원으로 해군이 K-6 기관총 18정을 마련했다. 한쪽 벽엔 유족과 관람객이 쓴 메시지 326개가 모자이크처럼 액자가 붙어 있다. 미군 장병이 적은 'never forgotten', 어린 조카가 삐뚤빼뚤 쓴 '삼촌 보고 싶어♥', 고 서대호 중사의 어머니가 쓴 '사랑하는 아들 항상 보고 싶고 사랑해'…. 가슴을 적시는 메시지 앞에서 많은 관람객이 눈시울을 붉힌다.

2함대엔 천안함기념관뿐 아니라 해군의 전쟁기념관 격인 서해수호관(2011년 개관)도 있다. 천안함기념관, 천안함과 더불어 관람하는 코스가 인기다. 올해만 벌써 4만명이 다녀갔다. 천안함이 일반에 공개된 2010년 이후 누적 방문객은 120만명에 달한다. 김록현 서해수호관장은 "천안함 기념관은 46용사를 영원히 추모하기 위한 기억의 공간이다"며 "호국의 달을 맞아 학생들과 국민이 많이 찾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바로잡습니다

▲1일자 A16면 '9시 22분에 멈춘 천안함 시계… '그날'을 말해주는 듯' 기사의 표에서 안내 전화번호 (031)685-4213은 (031)685-4123의 잘못이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