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재계 격돌…비정규직 제로(0)화 정책으로 충돌]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의 이용섭 부위원장이 어제 "실태 조사를 통해 과도하게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기업에 대해 부담금이나 새로운 부담을 주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했다. 대기업에 '비정규직 고용 부담금제'를 도입하겠다는 건 대선 공약이다. 고용 시장에서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는 건 마땅히 가야 할 방향이다. 하지만 새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이 노동시장의 본질적인 개혁이 아니라 손쉬운 '대기업 팔 비틀기'와 같은 보여주기 식으로 흐르고 있다.
대기업의 비정규직 숫자를 대통령이 챙기고 부담금도 물리겠다는 건 속 시원하게 들릴지 몰라도 제대로 된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숫자는 644만명에 이른다. 근로자의 32.8%가 비정규직이다. OECD 평균(2013년 11.3%)보다 월등히 높다. 하지만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13.6% 정도다. 반면 중소기업은 셋 중 하나, 영세 사업체는 거의 절반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전체 비정규직의 95%가 중소기업에서 근무한다. 대기업의 비정규직 숫자를 챙기는 것은 진짜 큰 문제를 놔두고 작은 곳만 보는 것이다.
대기업 비정규직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쪽에 속한다. 대기업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대기업 비정규직은 62.7이다. 중소기업 정규직은 52.7,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7.4 수준이다. 중소기업 정규직이 대기업 비정규직보다 임금이 낮다. 정부는 대기업 비정규직 문제가 아니라 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의 열악한 사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어제 "현재 논란은 정규직·비정규직이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대기업·중소기업 간 문제"라고 했다. 1994년만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100대78 수준이었다. 대기업과 공기업의 강성 노조가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을 챙겨 가는 바람에 임금 격차가 이렇게까지 벌어진 것이다.
비정규직 차별을 줄이고 고용을 창출하는 경제가 되려면 강성 귀족 노조가 만든 철밥통 임금 구조부터 깨야 한다. 그러면서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차별받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여 진짜 숫자가 많고 힘든 이곳 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해 가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게 정부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