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복 디자인과 똑같지만, 사이즈만 작은 옷 미니미(Mini-Me)
SPA 브랜드부터 명품까지, 지금 패션업계는 '미니미' 열풍
뉴발란스 키즈, MLB 키즈… 스포츠 키즈 라인 매출 고공행진
아동복 시장은 불황에도 끄떡 없어… 패션계 구원 투수로 등판

성인복과 똑같은 컨셉으로 컬렉션을 선보이는 돌체앤가바나의 키즈 라인

미혼인 직장인 남 모씨(남∙31)는 얼마 전 어린이날을 맞아 조카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가 예상과 다른 매장 분위기에 놀랐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와 장식이 들어간 아기자기한 스타일을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성인복과 다를 바 없는 디자인에 치수만 줄인 옷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매장 직원은 “요즘엔 아이다운(?) 옷을 찾는 분이 없어요. 아이들도 어른처럼 스타일링해 입는 게 유행이죠”라며 “손님이 찾는 스타일은 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에서나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복 시장에서 성인복을 줄인 미니미(Mini-Me) 패션이 인기를 얻고 있다. 기성복과 똑같이 생겼지만, 사이즈만 작은 옷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아동복 시장도 성인복과 똑같은 디자인의 상품이 출시되는 미니미 브랜드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유아동복 업체들의 실적이 보합세를 보이거나 뒷걸음질 친 것과 달리 스포츠, 아웃도어, 명품, SPA 등 성인 브랜드에서 파생된 키즈 브랜드의 매출은 두 자릿수 이상 신장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 명품 브랜드부터 SPA까지, 지금 패션업계는 ‘미니미’ 열풍

미니미 열풍은 명품과 SPA 시장에서 먼저 포착된다. 버버리, 몽클레어, 돌체앤가바나 등 명품 브랜드들도 성인복과 똑같은 아동복을 출시해 인기를 얻고 있다. 라이선스로 아동복을 판매하던 버버리의 경우 2015년부터 직접 아동복을 생산한 이후 아동복 매출이 15%가 신장했다. 유니클로와 자라도 키즈 라인의 반응이 좋아 키즈 라인 섹션을 비중 있게 운영하고 있다.

보브는 성인 라인의 미니미 버전인 브이주니어를 숍인숍 형태로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여성복 보브가 선보이는 키즈 라인 브이주니어도 성인복을 축소한 감각적인 미니미 스타일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김주현 마케팅부장은 “보브의 품평 과정에서 아동복으로도 만들어도 좋을 만한 옷을 골라 키즈 라인으로 생산한다. 매 시즌 호응이 좋아짐에 따라, 최근에는 신세계백화점 키즈 편집숍에 별도로 입점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미니미 브랜드의 성장 원인으로는 부모 세대가 가진 성향에서 찾을 수 있다. 패션업계가 활황을 누리던 1990년대에 성장기를 겪은 지금의 부모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패션 감각이 뛰어나고 취향에 따라 옷을 스타일링해 입는 것이 익숙하다. 자녀 역시 여자아이라 핑크색을 입히고, 남자아이라 하늘색을 입히는 정형화된 방식이 아닌, 시크, 스포티 등 취향과 컨셉에 맞춰 자녀의 옷을 스타일링하는 성향을 보인다.

연예인 가족이 함께 출연하는 TV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인스타그램 등의 SNS의 활성화도 미니미 패션 열풍을 거들었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등이 스타일리시한 자녀들의 사진을 공유하면서 아동 패션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 뉴발란스 키즈∙MLB 키즈 등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 키즈 라인 연 매출 두 자릿수 성장
뉴발란스 키즈, MLB 키즈, 휠라 키즈 등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에서 파생된 키즈 브랜드의 활약상도 주목된다.

이랜드그룹의 뉴발란스 키즈는 지난해 8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브랜드는 최근 3년간 연평균 20% 안팎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뉴발란스는 성인과 키즈의 동반 성장에 따라 글로벌 본사로부터 조인트벤처(JV) 설립을 제안받았다. 연내 조인트벤처로 운영 방식이 바뀌면 상품 경쟁력과 운영 안정성 등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뉴발란스 키즈는 올해 매출 900억 원, 성인과 총합 43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MLB 브랜드 전체 매출에서 키즈 상품의 판매 비중은 40%에 육박한다.

F&F가 전개하는 MLB 키즈는 지난해 713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 대비 14%의 성장세를 보였다. 다른 스포츠 키즈 라인이 전체 매출에서 10~20%의 외형을 차지하는 것과 달리, MLB 키즈는 브랜드 전체에서 키즈 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한다. 패밀리 룩의 인기와 함께 오승환, 강정호 등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활약상이 높아지면서 관련 제품의 매출이 급증한 것이 주효했다. 올해는 대표 상품인 신발과 모자의 물량을 늘려 85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할 계획이다.

이 처럼 패션업계가 전 복종에 걸쳐 아동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불황과 상관없이 성장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지난해 아동 상품군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가 늘었다. 현대백화점 역시 아동상품군 매출 증가율은 2014년 11.2%, 2015년 12.5%, 2016년 18.5%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주요 백화점의 연 매출성장률이 1~2% 성장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성과다.

NII는 성인복과 키즈 라인을 함께 패밀리 룩으로 제안하고 있다.사진은 건대 스타시티 ‘NII 마켓’ 매장 전경

전문가들은 저출산 풍조가 오히려 유아동복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진단한다. 아이가 귀해지는 만큼,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풍조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니미 브랜드는 ‘패밀리 룩’으로 제안돼 성인복의 연계 판매에도 효과적이어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아동복은 패션 유통시장에서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성인복 매출 부진의 구원 투수로 아동복이 거론되는 이유”라며 “최근 성인복과 트렌드를 함께 하는 ‘미니미 열풍’이 계속되면서, 앞으로 더 많은 성인복 브랜드가 키즈 라인을 론칭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