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첫날인 10일 자유한국당 등 야 4당 대표들을 모두 만났다. 황교안 총리와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정권 인수인계 문제도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와도 모두 전화 통화를 했다 한다. 문 대통령은 국회 약식 취임식에서 "오늘부터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섬기겠다"고 했다. 제왕적이라는 말까지 들어온 대통령 권력을 나누고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며 검찰이나 국정원 같은 권력기관들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도 끝나야 한다"며 야당과의 대화를 정례화하겠다고 했다. 야당 대표들을 만나서는 안보 관련 상황을 자주 브리핑하겠다고 약속했다.

역대 대통령들도 취임 때는 비슷한 얘기를 했다가 바뀌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야당과 부딪치게 되면서 피차가 구태로 쉽게 되돌아갔다. 이번에도 그렇게 된다면 희망이 없다. 다행히 문 대통령의 첫날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듯한 느낌을 줬다. 무엇보다 야당의 반대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총리 후보자를 지명했다. 통합·협치를 향한 국민의 요구가 크고 여소야대 상황에서 새 정부를 빨리 출범시켜야 하는 현실을 편견이나 고집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많은 국민이 문 대통령에 대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안보 문제다. 문 대통령은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한·미 동맹 강화를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했다. "필요 시 워싱턴으로 바로 날아가겠다"고 했다. 사드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 및 중국과 진지하게 협상하겠다면서도 국회 비준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평양에도 가겠다"고 했지만 "여건이 조성되면"이란 전제를 달아 원론적 언급으로 보이게 했다. 선거 과정에서는 표를 얻기 위해 자극적이고 과장된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이상 안보는 철저히 현실 위에 서야 한다. 최소한 취임 첫날 문 대통령은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이번 선거로 이 불행한 역사는 종식돼야 한다. 제가 대통령의 새 모범이 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말하는 새 대통령상(像)은 한마디로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협치(協治)하는 대통령이다. 그렇게만 하면 문 대통령 말대로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앞으로 문 대통령이 답답하고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자신이 했던 이 취임사를 다시 읽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