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kg짜리 랍스터에 자메이카 치킨과 스모크 치킨 각 한 마리. 돈가스 3판, 초밥 2인분, 우동, 냉모밀, 비빔모밀, 후식으로 케이크 한 판까지. 일주일치 식단이 아니다. 성인 10명이 주문한 메뉴도 아니다. 한 끼 식사에 단 한 명이 먹은 메뉴다. 주인공은 ‘먹는 것을 보여주는 방송’ 일명 ‘먹방’으로 괴물 같은 식성을 자랑해온 아프리카 TV의 1인 방송 진행자(BJ) 엠브로 이동현(29)씨다. 먹방으로 이름을 알린 그가 최근 ‘대왕카스테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엠브로 당신이 먹은 대왕카스테라는 식용유 범벅 빵이야!’
“방송에서 ‘대왕카스테라’를 먹고 며칠 지나서 라이브 먹방 중에 시청자들이 채팅으로 이런 말을 했어요. 무슨 일이지 싶어서 검색해 봤더니 카스텔라 제조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기사가 줄줄이 뜨더군요.”
일산의 한 식당에서 만난 이동현씨는 ‘대왕카스테라’에 관해 묻자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180cm가 넘는 키에 근육질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대구 사투리를 쓰며 말하는데 목소리 톤이 높고 발음이 좋아 경쾌한 인상을 줬다.
채널A는 카스텔라를 만들며 날달걀 대신 가공한 액상 달걀을 넣거나 빵 하나에 버터 대신 식용유 약 700ml를 사용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대왕카스테라는 대만에서 파는 빵을 들여온 것이라 ‘대만카스테라’라고도 한다. 싼값에 비해 양이 많고 맛이 좋아 줄 서서 먹을 정도로 잘 팔렸다. 방송은 삽시간에 일파만파로 퍼졌고, 소비자들의 구매 발길이 줄며 잘나가던 업체들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까지 갔다.
‘대왕카스테라는 몸에 안 좋은 음식일까?’ 논란이 되는 먹거리에 대한 오해를 직접 풀겠다며 먹방 BJ 엠브로가 나섰다.
“방송을 보고 시청자들이 오해했던 부분을 말하자면 끝도 없어요. 카스텔라를 포장한 종이에 묻어난 기름에 대한 부분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사람들은 이 기름이 몸에 이로운지 해로운지에 대한 판단 없이, 단지 종이에 기름이 묻어 나오는 것만을 문제 삼았죠. 그것을 잡아줄 필요가 있었어요.”
이동현씨는 당장 방송으로 피해를 본 업주들을 돕기 위해 ‘반박 방송’을 준비했다. ‘먹거리 X파일의 대왕카스테라 편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겠다’고 선전포고하며 관련 업주들의 제보를 요청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일주일 사이에 50여 명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사업자 등록증이나 가게 간판 사진을 보내는가 하면, 영수증과 함께 사용한 재료를 상세하게 적어 보내며 정직하게 장사하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오지랖일 수도 있죠. 먹방 BJ다 보니 음식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책임감을 느꼈어요. 어설프게 건드리면 문제를 키울 수 있기에 제대로 기획하고 준비했습니다.”
그는 먼저 전문가를 찾아가 방송에서 제기한 카스텔라의 9대 영양성분 검사표에 문제가 있는지, 식용유의 성분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짚었다. 방송은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포함해 30여 분 분량으로 구성했다.
최낙언 식품공학자는 인터뷰에서 “3대 영양소 권장량은 있지만 꼭 맞추라는 것은 아니라 골고루 먹으라고 권장하는 것”이라며 “방송에서 문제가 된 카스텔라의 성분이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만큼 위험하지 않다”고 전했다. 황교익 칼럼니스트도 “식용유는 말 그대로 먹어도 되는 기름”이라며 “식용유를 병째로 들이켜면 탈이 나겠지만, 음식에 넣는 것은 몸에 나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보통 카스텔라를 만들 때 식용유를 아주 조금 넣거나 넣지 않는다”며 “대왕카스테라는 제조법으로 따지면 시폰케이크에 가깝다. 빵을 제조할 때 식용유를 넣는 일은 흔하다. 단순히 ‘카스텔라에 식용유가 많이 들어가니까 나쁜 것이다’라고 몰고 가는 것은 잘못된 보도”라고 지적했다.
이동현씨는 “카스텔라에 들어간 식용유가 무조건 나쁘다고 인식한 것을 정정할 수 있었다”며 “그동안 먹을 줄만 알았지 성분검사결과표가 뭔지 제대로 몰랐다. 이번 방송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방송 이후에도 업주들의 요청이 간간이 들어온다고 한다. 주로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식당 업주들이다. 그는 “이번 방송은 잘못된 정보로 많은 이들이 피해를 받았기 때문에 시도했던 것”이라며 “난 단지 먹는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일 뿐이다. 모두를 대변해줄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동현씨가 먹방을 시작한 것은 2015년 4월이다. 아프리카 TV와 유튜브를 통해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주 2회 방송해 2년 만에 총 1만 7109시간의 먹방을 보여줬다. 방송 구독자만 40만여 명이 넘는다. 방송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BJ 인기 순위 2위에 올랐고, 아프리카 TV 신인상을 받으며 먹방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엠브로(MBRO)는 몬스터 형제(Monster Brothers)의 약자다. 네 살 위 친형과 사업을 구상하며 지은 이름인데, 팬들은 ‘괴물처럼 많이 자’로도 풀이한다. 그는 BJ를 하기 전에 헬스트레이너와 무역업에 종사했었다. BJ로 나선 이유도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름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단지 밥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학생 때 한 끼에 밥만 9공기를 먹었으니 남들보다는 많이 먹었죠.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먹방을 시작했습니다.”
방송에서 선보인 BJ 엠브로의 식성은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기내식 30인분 먹기, 소고기 27만원어치 먹기, 10kg짜리 연어 한 마리 통째 먹기 등 날마다 새로운 메뉴로 먹방에 도전한다. 한 달 식비만 400만원, 하루 기본 15만원을 식대에 쓴다. 처음 방송할 때만 해도 몸무게가 87kg이었는데 지금은 100kg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의 채널에 들어가면 ‘하루 두 끼, 1일 5똥, 토 안 함’ 등 재밌는 글귀들이 눈에 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는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다 보니 화장실을 자주 간다”며 웃었다. “방송을 위해 패스트푸드나 기름진 음식을 먹다 보니 살이 쪘어요. 탄산음료를 즐겨 먹는 편이 아니었는데, 시청자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했죠. 피자에 물을 마실 순 없으니까요.”
최근에는 방송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피자를 기름에 튀겨 먹거나 헤어 드라이기로 고기를 구워 먹는 식의 ‘실험 먹방’과 야밤에 식사하는 ‘심야 먹방’, 증폭 마이크를 이용해 재료의 식감을 들려주는 ‘ASMR 방송’ 등 독특한 콘텐츠도 보여주고 있다.
‘먹방 대가’에게 제일 맛있는 음식이 무엇일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 밥’이라고 답했다.
“어머니가 식당을 오래 하셨어요. 그 덕에 외식의 기회는 별로 없었죠. 어머니는 밑간을 약하게 하고 건강식을 좋아하세요. 방송에서 렌틸콩이 좋다 하면 꼭 한 번은 먹어야 했죠. 처음 방송에서 패스트푸드를 먹을 땐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았어요. 정말 신났죠. 평소 못 먹던 음식이었으니까요.”
거뭇거뭇한 머리에 덩치가 산만 한 청년이라도 어머니의 눈에는 아직도 어린 아들이다.
“한번은 실험 먹방을 하다가 기름이 튀어서 화상을 입은 적이 있었어요. 방송 중에 어머니가 전화하셨죠. 아들이 어떤 방송을 하든 상관없지만, 다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안 좋았다고 하셨어요.”
BJ 엠브로의 먹방이 인기 있는 데는 매번 새로운 음식에의 도전도 있지만 무엇보다 깔끔한 식사 예절에 있다. 어려서부터 그의 어머니는 식탁 예절에 깐깐했다고 한다. ‘식사할 때 숟가락에 밥풀이 묻어 나오면 지저분하니 안 보이는 곳에 물을 두고 항상 적셔라’라든가 ‘쩝쩝 소리를 내거나 입안에 든 음식물을 보이는 건 테이블 매너가 아니다. 입 가리고 먹어라’ 등 어머니의 ‘꼼꼼한 잔소리’는 방송 성장에 큰 도움을 줬다.
BJ 엠브로에게 '식사'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먹는 것 자체가 축제"라고 답했다.
"인간의 삼대 욕구 중 하나가 식욕입니다. 저는 식욕에 충실한 사람이에요. 좋아하는 걸 하면서 돈도 벌고 사업도 할 수 있고. 지금 방송이 정말 좋아요. 삼박자가 딱딱 맞으니까요. 앞으로 온 가족이 거실에 앉아서 볼 수 있는 깨끗한 방송, 먹거리에 대해 다양하게 다룰 수 있는 콘텐츠에 충실한 채널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