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 15층 복도에서 주부 A(여·59)씨가 비명을 질렀다. 같은 층에 사는 B(46·무직)씨가 아파트 복도 난간에서 A씨를 들어 올려 아래로 떨어뜨리려 했기 때문이다. A씨 비명을 듣고 뛰쳐나온 이웃 주민들이 B씨를 말리지 않았다면 인명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사건의 발단은 A씨가 기르는 몸길이 50㎝ 반려견이었다.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작년 11월 B씨는 A씨 반려견에게 손등을 물렸다. B씨는 사과와 보상을 원했지만 A씨는 받아들이지 않아 서로 계속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그날도 개가 시끄럽게 짖어 따지러 갔는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서 화를 참지 못했다"고 했다. 경찰은 B씨를 살인 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층간 소음 갈등보다 훨씬 많은 반려견 갈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면서 이로 인한 갈등도 증가하고 있다. 2015년 서울시는 반려동물로 생겨나는 민원을 조사했다. 8개 자치구(동작·강서·동대문·서대문·강북·강동·금천·중랑)가 조사에 응했는데, 소음·배설물·물림·목줄 미착용 등의 문제로 접수된 민원이 1018건에 달했다. 그중 개 짖는 소리 등 소음 관련 민원이 331건으로 가장 많았다. 같은 해 8개 구에 접수된 층간 소음 관련 민원은 188건이었다. 강동구의 경우 작년 한 해 반려동물 민원은 123건으로 층간 소음 민원(23건)보다 5배 이상 많았다. 최재민 강동구청 동물복지팀장은 "수년 전만 해도 이웃 간 다툼의 첫째 이유가 층간 소음이었는데, 지금은 반려동물로 바뀌었다"고 했다. 최 팀장은 "층간 소음 갈등은 아파트나 빌라에 사는 위·아래층 주민들 간 다툼이 대부분이지만, 반려동물 갈등은 아파트 주민 전체는 물론이고 마을 단위로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 3층 다가구주택 옥탑방에 사는 취업 준비생 정동규(27)씨는 얼마 전 스마트폰에 소음 측정 앱을 설치했다. 아랫집에서 기르는 반려견 4마리가 짖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측정해서 개 주인에게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측정치는 65dB(데시벨)로 전화벨 수준이었다. 정씨는 "측정 결과를 보여주며 아랫집에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강동구청에는 지난달 '개 배설물이 매일 대문 앞에 놓여 있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민원인은 최근 이웃집 진돗개가 시끄럽게 짖는다고 신고했고 이후 개 주인한테 복수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키우는 집에 관리비를 추가로 징수하는 다세대주택도 생겨났다. 지난해 7월 경기 성남 분당구 한 빌라는 관리비 고지서에 반려동물 부담금 명목으로 총관리비의 5%를 추가 징수하기 시작했다. 총 115가구 가운데 반려동물을 키우는 10여가구에 적게는 5000원에서 많게는 1만5000원의 반려동물 부담금을 부과토록 했다. 하지만 입주민들과 동물 단체의 거센 반발로 석 달 만에 이 관리비 규약을 철회했다고 한다.
동물갈등조정관도 효과 없어
서울시는 반려동물로 인한 이웃 간 갈등을 중재하려고 작년 4월 동물갈등조정관 제도를 신설했다. 서울시 공무원과 민간 동물 전문가, 시민 등 총 11명으로 구성돼 민원이 접수되면 2인 1조로 현장에 출동한다. 하지만 이웃 간 갈등이 첨예하다 보니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고 한다. 배진선 서울시 동물보호과 주무관은 "동물로 시작한 다툼이 이웃 간 감정싸움으로 격화돼 여러 중재안을 내놓아도 수긍하는 사람들이 드물다"고 했다. 지난해 6월 용산구의 한 단독주택 주민은 '캣맘'(길고양이 보살피는 사람들)이 먹이를 주는 길고양이들이 자신의 정원을 해치고 변을 배설한다고 신고했다. 동물갈등조정관은 중성화 수술을 통해 길고양이 개체 수를 줄이자는 중재안을 내놨는데 이 주민은 "중성화 수술한다고 고양이가 똥을 안 싸느냐. 데리고 가든지 없애 달라"며 반대했다.
주택가뿐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일어나는 반려동물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주부 김모(37)씨는 "어린 아들 둘과 공원 산책을 나갔는데 목줄을 하지 않은 개가 달려와서 위협했다"며 "개 주인에게 항의하자 '안 물렸으면 됐지 왜 그러느냐'고 따져서 황당했다"고 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월드컵공원 등 7개 서울시 직영 공원에서 적발된 '반려동물 목줄 미착용' 건수는 6260건, '반려동물 배설물 미수거' 1013건이었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 10만원 부과가 원칙이지만 실제 부과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반려동물을 자기 자식처럼 여기며 기르는 사람들과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갈등"이라며 "반려견 주인이 에티켓을 잘 지키는 게 우선이며, 반려견 놀이터 확충 등 제도적인 보완도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