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이래 매년 세종대왕의 양력 생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은사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날로,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다.
그러나 마음을 전달하는 날이 '우리 아이 잘 봐달라'는 의미로 왜곡되면서 학교 담임 선생은 물론, 교직원들에게도 명품을 선물하거나 돈 봉투가 오가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고가의 선물을 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간 위화감을 조성했던 '촌지 문화'를 뿌리 뽑기 위해 일명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 모든 학교 교사와 교직원이 포함됐다.
지난해 9월 28일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첫 스승의 날인 만큼 학생과 학부모에게 혼란을 줄이고자 국민권익위원회는 "급우들을 대표해 학생 대표가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정도는 허용한다"는 입장을 미리 밝혔다.
한편으로는 선생님에게 카네이션을 줄 수 있는 자격을 반장으로 한정한 것은 과도한 제재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다. 제자가 스승에게 꽃 한 송이 드리는 것은 50여 년 이어져 온 문화인데 이를 막는 것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는 것이다.
해외 곳곳에도 스승의 날을 기념하는 문화가 있다. 다른 나라에는 우리나라와 같이 촌지 문제에 대한 염려는 없는지 알아봤다.
태국에서 스승의 날은 매년 1월 16일로, 전국의 모든 학교가 휴교한다. 그리고 학교별로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연다. 학생들은 공경한다는 뜻을 담아 만든 수제 꽃을 선생에게 절을 한 뒤 건넨다. 불교 문화가 반영된 모습이다.
몽골에서는 매년 2월 첫째 주 일요일마다 학생이 선생에게 편지와 꽃다발을 선물한다. 학교 차원에서 스승의 날과 관련해 노래나 춤, 글짓기 대회 등을 개최해 제자와 스승이 함께 어울린다. 특히, 몽골에는 이날 학교마다 교직원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통해 한 해를 되짚어 보고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힘쓴다. 회의가 끝나면 레스토랑을 빌려 그들끼리 흥겨운 시간을 가진다.
미국에서 스승의 날(National Teacher Day)은 매년 5월 첫째 주이지만, 한 주 전체를 '스승에 대한 감사 주간(Teacher Appreciation Week)'으로 정해 각종 행사를 즐긴다.
전미교육협회(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NEA)의 스승의 날 축하 활동 제안서에 따르면, 은행을 비롯한 사업장에서 축하 문구가 적힌 간판을 달고, 교사들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나 작가 등이 일일 교사로 참가한 경험을 보도한다. 학교의 경우 교실 문 앞을 교사의 이름·축하 메시지와 함께 풍선이나 꽃으로 장식하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학생이 선생에게 선물할 때는 사탕·사과 등 20달러 내외 비싸지 않은 상품을 주며, 마음을 담은 축하카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매년 6월 12일이 스승의 날인 독일에서는 학생들이 선생을 존경의 뜻으로 초콜릿·꽃·손수건 등과 같은 작은 선물을 준다. 특이하게도 선생들은 학생들 앞에 받은 선물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준다. 곱지 않은 시선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귀중품을 선물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대만에서 매년 9월 28일은 법정 공휴일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중화권에서 최고 위인으로 꼽히는 공자 탄생일인 동시에 스승의 날이기 때문이다. 전국 곳곳에 있는 유교 사원에서 '제공대전(祭孔大典)'이라는 공자 탄신 기념축제가 열리는데, 이때 지역 우수 교사들을 선정해 상을 수여한다. 학생들이 선생에게 카드로 감사함을 전하는 경우도 있으나 선물은 잘 하지 않는다.
대만과 달리 중국 대륙에서는 9월 10일이 스승의 날(敎師節)로, 해마다 학부모들이 준비하는 시계·휴대전화 등 고가의 선물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982년 폴란드는 30년 가까이 이어온 스승의 날을 폐지했다. 학부모들의 지나친 선물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교육의 날(Dzień Edukacji Narodowej)'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매년 10월 14일에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데, 아예 법정 공휴일로 지정해 교내 불미스러운 세태를 단속하고 있다.
교권이 강한 베트남에서는 매년 11월 20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해 학생이 선생에게 감사함을 전할 수 있는 개별 시간을 갖도록 한다. 음식이나 비누, 꽃 등을 들고 선생의 집을 직접 찾아 인사를 드리는 것이 특징이다.
인도네시아는 정부 차원에서 한 해 동안 교육현장에서 힘쓴 교사를 위로하는 축제를 마련한다. 스승의 날을 기념하는 축제는 매년 11월 25일 열리며, 전국에서 1만 명이 넘는 교사들이 버스를 타고 한자리에 모인다. 대통령 또한 반드시 참석해 축사하고 훈장을 수여한다. 전국에 생중계될 정도로 이 축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우리나라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스페인 학급에서 매년 11월 27일 학생들이 모여 선생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편지를 건네는 등 이벤트를 연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서면 스승의 날과 관련한 축하 행사가 거의 없다. 개별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는 해도 인사에 그치며 선물은 하지 않는다.
해외 일부 국가들 역시 스승의 날 행사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제자가 스승에 대한 존경·감사 등을 표현하는 이 날을 중요하게 여긴다. 학생이 선생에게 마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작은 선물은 할 수 있어도 선물 가격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청탁금지법이 우리나라 교내에도 금품 거래가 없는 스승의 날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학생과 학부모 스스로 값이 나가는 선물을 하는 것을 경계하며 '비싼 선물을 안 하면 선생의 관심을 덜 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없앨 수 있다.
다만, 학생들이 규제에 과도하게 위축돼 학창시절에만 나눌 수 있는 재미를 잃을 필요는 없다. 청탁금지법이 칠판에 깨알 같은 글씨로 감사 편지를 쓰거나 조촐한 과자 파티를 준비하는 등 학급 구성원 전체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이벤트마저 제한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