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알았습니다. 나만 오이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힘을 모을 때입니다."
최근 페이스북에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오싫모)'이 생겼다. 오이를 뺀 물냉면 사진을 배경으로 한 이 페이지에 보름 새 9만명 넘는 회원이 가입했다. 오싫모 회원들이 말하는 바는 단 한 가지.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 오이를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싫모에는 오이를 먹기 싫은데 먹어야 했던 경험담이 쏟아진다. '초등학교 때 급식으로 오이소박이가 나왔을 때 식은땀을 흘리며 선생님에게 못 먹겠다고 말했는데도 혼났다' '샌드위치를 살 때는 몰랐는데 잘게 다진 오이가 들어가 있어 먹을 수 없었다' 같은 게시글이 하루 수십 건씩 올라온다. 오이라떼, 오이냉국 같은 '오이 혐오' 사진을 올릴 때는 오이를 모자이크로 반드시 가려야 하며 '오자이크'라고 부른다.
오싫모를 운영하는 20대 중반 대학생 한모씨는 "별생각 없이 10분 만에 만든 페이지가 이렇게까지 관심을 받을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초등학생 때 급식으로 나온 오이를 먹다가 토한 뒤 '오이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한씨는 친구들에게 오이를 먹지 못하는 것을 알리려고 오싫모를 만들었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만들어 친구 몇 명만 가입했던 페이지가 다음 날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한씨는 "이제까지 당연한 듯 김밥에 오이를 집어넣고 냉면에 오이를 올려 왔다"며 "오이를 못 먹는다고 말하면 비정상으로 보는 사람들 때문에 억울했던 사람이 다 모인 것 같다"고 했다. 한씨가 페이지에 올린 '이제 힘을 모아 세상을 바꿔나가자'는 게시글에는 1만명 넘는 회원이 '좋아요'를 눌렀다.
페이지가 인기를 끌자 '나는 오이를 좋아한다'며 오싫모에 오이 사진을 올리는 사람도 생겼다. 한씨는 "그들은 '오이 기득권자'라고 불린다"며 "지금은 '오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생겨 그곳에 모여 있다"고 말했다. 오싫모를 따라 가지, 버섯, 깻잎 등 각종 채소를 싫어하는 사람들 모임이나 술 싫어하는 사람들 모임도 생겨났다.
오싫모의 폭발적 인기에 대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싫모는 단순하게 보면 오이를 먹기 싫다는 주장이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차별하는 사회문제를 지적하는 문화 현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며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모여 서로 공감하고 보듬어주는 공간이 됐다"고 설명했다. 부산의 취업준비생 조모(27)씨는 "주변에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나뿐이어서 오이 때문에 핀잔을 들을 때마다 서운했다"며 "페이스북에서 오싫모를 보자마자 가입했다"고 했다.
페이지 운영자 한씨는 오싫모의 인기를 '동질감'으로 설명했다. 장난처럼 만든 페이지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돼 신기하다고 했다. 한씨는 "여전히 오이는 싫지만 오이는 죄가 없다"며 "오이 기득권자들과 싸우지 않고 재밌게 지낼 계획"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