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열풍이 전 세계 과학 분야와 바둑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지 만 1년여가 지났다. 인공지능(AI) 대국 프로그램인 알파고는 지난해 3월 인간 대표 이세돌과 치른 역사적 바둑 대결에서 예상을 뒤엎고 승리, AI와 바둑계가 함께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발자국을 남겼다.

이세돌과 알파고가 당시 치렀던 1주일 동안의 감동적 대결 스토리가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이달 공개된다. 상영될 무대는 19일부터 30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TFF)이다. 장편과 단편, 다큐멘터리 등 일반 분야는 물론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창조적 소재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흥 영화제다. 높아진 위상을 반영하듯 올해는 응모작 4385편이 몰려 무대에 오르기 위한 치열한 경합을 펼쳤다.

이세돌(오른쪽)에 맞선 알파고 측 대리인 아자황 박사가 착점하고 있다. 1년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당시 대결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이달 트라이베카 영화제에 오른다.

'알파고'란 이름의 이번 출품작은 구글 자회사이자 알파고를 탄생시켰던 딥마인드가 제작했다. 영어와 한국어로 만들어졌으며 총러닝타임은 90분이다. 21, 23, 24, 26일 등 나흘에 걸쳐 스크린을 탄다. 이번 영화제에서 세계 초연으로 무대에 오르는 출품작은 총 36개에 불과한데 이 명단에 포함됐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겸 알파고 제작 책임자인 데미스 허사비스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세계 개봉작에 선정된 것은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결과"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알파고' 연출을 진두지휘한 그레그 코즈(Greg Kohs)도 이 분야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재주꾼이다. NFL(미식축구리그)을 다룬 작품들로 'TV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에미상을 무려 10차례나 수상했다. '송 성 블루'(2008년), '더 그레이트 얼론'(2015년) 등 걸작을 내놓아 주가를 높이고 있는 제작자 겸 연출자 겸 작가다. 이번 작업에선 촬영기사 역할까지 겸했다.

'알파고'의 내용은 아직 베일에 가려 있지만 대국이 이루어지기까지 양측의 준비 과정, 대국장 안팎을 둘러싼 현장 분위기, AI가 예상을 뒤엎고 인간을 꺾은 뒤 전 세계를 강타한 충격파, 승자 측의 성취감과 패자 이세돌의 고뇌에 찬 모습 등이 주로 그려질 전망이다. 행사 기간 전 세계를 강타한 바둑에 대한 관심과 시대적 화두가 된 AI의 미래도 포함한 것이 확실하다.

또한 전체 5판 중 특별히 화제가 됐던 수(手)들에 대한 고수들의 반응과 견해도 다뤘을 것으로 기대된다. 작품에서 '주연' 격인 이세돌은 물론이고 딥마인드의 허사비스 CEO와 데이비드 실버 수석 프로그래머, 알파고를 대신한 대리 착점으로 인기를 모았던 아자황 박사, 이세돌에 앞서 알파고와 먼저 대국했던 중국 출신 프로기사 판후이 등 관계자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비화가 나올 수도 있다.

TFF 홈페이지는 "이 영화는 인간에게 맞서는 기계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AI의 미래 역할에 대한 전망에만 그치지 않고 인간의 심리적 움직임을 살피는 데도 충분히 신경을 썼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세돌 9단은 "구글 측으로부터 가족과 함께 행사 기간 현지를 방문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으나 중국리그 등 일정이 맞지 않아 못가게 됐다"며 아쉬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