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수현씨

"고(故) 이수현씨의 고귀한 희생정신이 한·일 양국을 잇는 가교가 되길 바랍니다."

지난 30일 도쿄 신주쿠구 주일(駐日) 한국문화원 소극장에서 특별 시사회를 연 영화 '가케하시(懸橋)'는 일본 유학 중이던 지난 2001년 신주쿠구 JR야마노테선(線) 신오쿠보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의인(義人) 이수현(1974~ 2001)씨의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만든 작품이다. 영화를 제작한 이토 시게토시씨는 "역사 문제 등으로 한·일 두 나라 사이에 아직도 큰 벽이 가로놓인 것이 사실이지만, '가교'가 끊어지지 않아야 관계를 개선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나와 제작진 생각"이라고 했다.

영화 제목 '가케하시'는 떨어진 양쪽을 이어주는 '가교'를 가리키는 일본어이다. 이토씨는 "한국과 일본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 일본에 온 이씨처럼, 누구나 두 나라 사이의 가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이를 알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아들을 잃은 뒤에도 한·일 양국 교류를 위해 애쓰는 이씨의 부모에게 감동한 것도 영화 제작의 한 이유였다. 이씨의 아버지 이성대씨와 어머니 신윤찬씨는 사고 이듬해부터 매년 일본을 방문해 일본에서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이씨 부부는 사고 이후 일본 각지에서 보내온 위로금 1000만엔(약 1억원)을 장학 기금으로 내놨다.

30일 도쿄 신주쿠구 주일 한국문화원 소극장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 ‘가케하시’ 시사회를 마치고 영화 제작자 이토 시게토시(오른쪽)씨가 영화 제작에 참여한 제작진과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1부는 이씨의 사고 당시 상황과 일본 생활을 다뤘다. 2부에는 그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활동을 펼친 이씨 부모님과 그를 추모하는 후배들 사연이 나온다.

이토씨는 몇 년 새 싸늘히 얼어붙은 한·일 관계에 대한 안타까움도 토로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역사적 상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일본인은 한국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일본을 도와준 사실을 기억하고 고마워합니다." 그는 "우리의 이런 작은 움직임이 양국 관계를 더 가깝게 만들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았다. "영화 제작에 불만을 품은 반한(反韓) 일본인들이 항의 편지를 수십 통 보냈습니다. 비(非)상업 영화라 제작비도 턱없이 부족했고요." 2014년 시작한 영화 제작 기간이 2년을 훌쩍 넘겼다. 돈이 떨어지면 중간 중간 성금을 모으러 다녔다. 그는 "프로듀서인 나도 직접 촬영에 나섰고, 배경음악 일부는 스태프들이 재능 기부한 연주를 녹음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사회에는 일본인과 재일 교포 260여 명이 참석했다. '신오쿠보역에서 인명 피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라는 지하철 역무원의 안내 방송이 담긴 영상이 흐르자 객석에서 울음이 터졌다. 니시무라 유미리(여·25)씨는 "이씨의 선행을 고맙게 생각하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참석했다"며 "나도 이씨처럼 두 나라를 이을 가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